11. 그 이후의 나
퇴사 후 강릉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바닷가가 보이는 아파트를 얻었다. 강릉 구석구석을 다니기 위해 차도 렌트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차를 끌고 나갔고, 바다를 봤다. 바다 앞에서 멍하니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유명한 수제버거를 포장해서 솔밭에 앉아 먹기도 했다.
어떤 목적지를 갈 때도 일부러 해안도로로 돌아서 가곤 했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어디로 달아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바다를 보러 다녔다.
처음엔 서울토박이라 그런가 한산한 강릉이 어색했지만 막상 서울로 돌아왔을 땐, 어휴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릉에 잘 적응했었다.
그전부터 십자수, 아크릴물감으로 그림 그리기 등을 깨작깨작 했던 터라 공예 쪽으로 해볼 만한 것이 있을까. 찾다가 향수 만들기, 도자기 만들기(도예)와 석고방향제 만들기 클래스를 등록했다.
1:1 클래스로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낯가림이라는 것을 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에 클래스 강사님과 퇴사 후 강릉 한 달 살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안식월을 보내러 온 나에게 응원과 맛집을 추천해주시곤 했다.
아빠의 고향이었던 강릉에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의 묘가 있는 가족산이 있다. 어렸을 적 1년에 한두 번씩은 가서인지, 길눈이 밝은 편인지 굳이 네비를 찍지 않아도 갈 수 있었다. 굽이굽이 시골길을 달려 산 입구까지 갔다. 산입구엔 아주 싸나운 개 두 마리가 묶여있었다. 원래는 집 앞에 묶여있는 친구들이었는데 옮겨져 있었다. 열렬히 짖어대는 개들에게 나는 칩입자가 아니라고 그냥 지나가게만 해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통하질 않아 어쩔 수 없이 돌아오며 가족톡에 인증샷을 보내주었다.
다음 성묘 때는 ‘소세지’를 들고 와야 할 것 같다고.
그리고 한 달의 기간 동안 주말마다 여러 명의 회사 동료들, 친구, 내 또래의 친척등의 지인들이 놀러 왔었다. 방 2개에 소파 달린 거실까지 있는 아파트를 빌렸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강릉을 좋아해서인지 나의 지인들도 강릉을 좋아하길 바랐다. 덕분에 나는 여러 코스의 강릉여행을 공부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성격의 코스와 느긋한 코스. 그들은 강릉에 푸른 바다와 예쁜 카페를 보러 왔다고 했지만 나를 위해 멀리까지 와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잘 보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강릉을 그와 함께 하고 싶어, 조르고 졸라 함께 여행을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에 그와 함께였던 곳을 지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땐 그가 생각났지만 그 외적으로는 그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아가 그와 함께였던 곳을 지인들과 다니며 그에 대한 추억을 다른 좋은 추억으로 덮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난 나만의 방법으로 그를 보냈고,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내 자신을 사랑해가고 있다.
부디 그도 평안하길.
<아픈 손가락일 필요까지 있나>
11부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