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ying Pie Feb 16. 2023

추천서? 노 프라블럼!

추천서 남발(?)하는 선생 이야기

신 선생은 주로 11, 12학년을 담당하다 보니 매년 가을부터 겨울 내내 학생들을 위한 추천서를 쓰느라 바쁩니다. 네, 무척이나 귀찮습니다. 그래도 가려 받지 않고 써달라는 대로 다 써줍니다. 물론 인성이 아니다 싶으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거절하겠지만, 다행히 그런 녀석들은 아예 부탁하지도 않더군요. 추천서에 쓰인 대로 잘했던 녀석들은 잘했으니까 써주고요, 그 정도로 잘하지는 못했던 아이들은 가능성을 보고 최대한 잘 써줍니다.


대한민국의 고속 거품성장 시절의 끝물에 대학을 다녔던 신 선생은 나름 괜찮다는(?) 대학 간판만 믿고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성당 주일학교 지하실에서 기타나 치면서 청춘을 다 보냈습니다. 매해 봄, 가을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까지 신입 사원을 모집하는 기업들의 구인 광고들로 일간지들이 도배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아주 우스운 성적으로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나니 나라가 망했다더군요. 굴지의 대기업들도 줄도산을 하고, 취업길이 꽉 막혀버렸던 소위 IMF시절, 저도 별 수 없이 거의 일 년을 동네 도서관이나 다니면서 쓸데없이 토익공부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나이 서른 다 돼서 캐나다에 와서 다시 공부를 하려 하니, 어딜 가나 그놈의 추천서를 요구하더군요. 창피함을 무릅쓰고 대학시절 교수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구구절절 사정 설명을 하고 추천서를 부탁했지만… 단 한 장도 받지 못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신 선생을 기억조차 못했고요, 또 몇몇 분들은 완곡하게 거절을 하더군요. 공부도 잘 못했고 누군지 기억도 잘 안나는 졸업생의 부탁이 그저 귀찮았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하는 수 없이 대학원 진학은 포기하고, 학부로 다시 들어가서 10년이나 어린 친구들과 같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론 더 잘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십여 년이 지난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좀 씁쓸합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일까요, 신 선생은 그다지 잘하지 못했던 아이들이라도, 대학 진학을 위해서 추천서를 부탁하면 최대한 잘 써줍니다. 잘하라고 축복도 해주고요. 이제 겨우 만 나이 열여섯, 열일곱 살 때의 모습을 보고서는 그 아이들은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짓는 것은 좀 너무 성급하지 않나요? 나이 서른 다 되고서야 겨우 철든 저 같은 사람도 있는데요...


아 근데, 귀찮기는 정말 무척이나 귀찮습니다.

이전 03화 볼 빨간 사춘기 Joh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