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3, 2017
올해는 내 교사 인생에서 가장 시끄럽고 말 안 듣는 반 하나를 맡고 있다. 한 학년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역대급 까불이들이 무려 다섯 명이나 몰려있는 반이다. 이 녀석들의 이름을 듣던 동료들은 하나같이 “오 마이 갓! 그 녀석들이 다 한 반에 몰려있다고?” 놀라며 나에게 신의 가호를 빌어주었다. 특히 지난 9월 새 학기 첫날, 한눈에 보기에도 반항기 넘치던 11학년 John(가명)이 눈에 심히 거슬렸다. 아무리 까불고 막 나가는 녀석들이라도 보통 새 학기 첫날에는 교사와 서로 탐색전을 펼치며 조용하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첫날부터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수업 분위기를 정말 망쳐놓았다.
이 녀석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었지만 행동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거의 매일 선생과 싸우다가 복도로 쫓겨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얼굴과 목이 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해서 씩씩거리면서 쫓겨나곤 했는데 진짜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이 녀석과 그 패거리들 때문에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중에는 그 반 수업이 있는 그 전날 밤부터 짜증이 났고, 심지어 꿈에도 이 녀석들이 나와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나중엔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교감한테 가서 상의를 해볼까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러던 중, 동료에게서 John이 지난여름 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근데 그 동료는 John의 반항적인 행동이 딱히 어머니의 사망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했다. 원래 중학교 때부터 말 안 듣고 까부는 걸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는 이 녀석을 이제 그냥 포기해야 하나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과 후 튜토리얼을 하고 있는데 John이 왔다. 물론 공부하러 온건 절대 아니고 그냥 친구 찾으러 온 거였다. ‘어이구, 내가 이 녀석을 방과 후에도 봐야 하나’ 하며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근데 또 한편으론 왠지 이 놈한테 말을 걸어봐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생각이 들었는데, 뭐라 생각을 정리할 사이도 없이 갑자기 떠밀린 듯 “오! John! 네가 여길 웬일이냐? 공부하러 왔어? 잘 왔다!” 라며 호들갑을 떨며 환영을 해버렸다. (내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정말 모르겠다.) 근데 녀석도 갑작스러운 나의 환대에 어이가 없었는지 당황한 듯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그냥 피식 웃더라. 내친김에 에라 모르겠다 John이랑 할 말이 있다며 공부하고 있던 다른 놈들 다 내쫓아 버리고, 싫다는 놈 억지로 붙들어 놓고 둘이서 얘기를 좀 했다.
“존, 너 나 싫어하지?”
“아니오.” (완전 무뚝뚝하게)
“난 너랑 잘 지내고 싶은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 거의 매일 싸우고 있지? 이거 때문에 나는 아주 스트레스받아서 힘들다. 너도 내 수업에 들어오기 싫지?”
“…”
“혹시 나한테 바라는 거 있어?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 내가 너에 대해서 뭐 오해하는 거라도 있다면 말해봐.”
“아뇨, 없어요.”
“괜찮아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하면 너한테 도움이 될까?”
“그냥 다 제문제예요.”
“그래, 난 그냥 너랑 잘 지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어. 우리 앞으로 서로 노력해 보자.”
“네.”
사실 별 내용도 없는, 대화랄 것도 없는 짧은 대화였지만 그날 이후 John은 확실히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모범적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최고 나쁜 놈’에선 확실히 벗어나 그냥 좀 ‘주의 산만하고 떠드는 놈’ 정도로 발전했다. 수업 중 쫓겨나는 일도 현저히 줄었고 성적도 많이 올라서 40점대를 헤매던 녀석이 이젠 6-70점대를 꾸준히 받고 있는데 가끔은 80점 이상도 받으면서 선전하고 있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이 녀석이 공부할 때는 괜히 옆에 가서 장난을 건다.
“오, John! 너 왜 그래?”
“아 또 왜요?”
“너 지금 10분 넘도록 꼼짝도 안 하고 문제 풀고 있는 거 알아? 아침에 뭐 잘못 먹었냐?” 하면서 하이파이브나 주먹 인사를 날리면 아직 무표정 츤데레이긴 하지만 그래도 못 이기는 체 받아주는데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오늘은 시험지 채점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아 글쎄 이놈이 지난 시험에서 95점을 받은 거야! 시험지 돌려받고 녀석이 놀래 자빠질 걸 생각하니 내가 다 흥분이 되었다. 방과 후에 친구 찾으러 우리 교실에 들른 존을 발견하고 용수철처럼 튀어나가서 정말 호들갑스럽게 와락 안아주고 등짝을 팡팡 치니 “아, 또 왜 이러세요?” 하면서 뒷걸음질 치더라.
“야 이 자식아, 너 이번 시험에서 95점 받았어!” 했더니 그 얘기를 들은 반 전체가 다 놀래 자빠졌다. 본인도 물론 안 믿는 눈치였고. 내가 시험지를 보여주며 “야 너 이거 어떻게 받은 거야? 솔직히 말해. 너 치팅했지?” 했더니 “아씨, 미스터 신, 저 시험 볼 때 바로 옆에 앉아계셨잖아요!” 하는데, 이 자식 또 얼굴은 물론 목까지 뻘겋게 흥분해 있는 걸 보니 지도 좋기는 엄청 좋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