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ain't over, till it's over
- 교사의 이야기
오늘 무슨 날이죠?
(체육 대회요)
어떤 활동을 하기로 했죠?
(피구요, 컵 쌓기요...)
그럼 어제 각 반 대표가 샘과 함께 합의한 피구 규칙을 설명해 주겠습니다.
(아, 이제 그만하고)
(다 알아요)
(다른 반 다 나가는데)
바르게 앉으세요. 손, 무릎, 허리, 눈, 미소. 아니, 샘한테 지금 짜증 내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즐거운 체육대회가 되도록 한 달 전부터 종목 선정하고 물건 사고 시간 계획, 안전 계획. 샘이 어떻게 하면 우리 사랑하는 4학년 특히 4반이 좀 더 즐겁게 체육의 날을 즐길 수 있을까 고민고민해서 준비한 것 압니까?, 모릅니까? 아니, 좀 섭섭하려고 하네. 여기 계획표 보세요. 여기 샘 서류 보세요. 샘 회의록 보세요. 규칙 없이 게임할 수 있어요? 이 많은 학생이 규칙 없이 움직이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어요. 더구나 이 피구규칙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대표에게 말하고 대표들끼리 또 모여서 합의한 거잖아요.
체육대회 시간이 늦어질까 봐 조바심이 나는 거예요? 체육대회는 진작 시작됐어요. 샘이 계획을 세우려고 여러분 의견을 물었던 한 달 전부터, 그때부터 여러분들 설렜잖아요. 그때 시작된 거예요. 가깝게는 여러분이 어제 자기 전에 '내일 재밌겠다. 꼭 이겨야지' 하고 잤잖아요. 피구 규칙 정한다고 회의했잖아요. 그게 다 뭐예요?
(체육대회요)
체육대회는 피구를 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물풍선 터트리기 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여러분 피구 선수 될 겁니까? 다음 올림픽에는 물풍선 터뜨리기가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책택되는 거예요? 피구를 통해 규칙을 배우고 성실, 배려, 책임, 이해를 배우는 시간이에요. 샘은 피구에 관심이 없어요. 샘은 누가 불리하고 유리하고 잘하고 못하고 관심이 없어요. 누가 이 시간을 진짜 즐기는지, 누가 최선을 다하는지, 누가 규칙을 잘 지키는지만 봐요. 샘은 우리 반이 지는 건 하나도 안 창피합니다. 하지만 대충 하고, 핑계 대고, 따지면 창피합니다. 그래서 대회라고 안 하고 체육의 날이라고 하자는 샘도 있어요. 대회는 왠지 너무 겨루는 느낌이 강하잖아요.
샘들은 여러분들이 합의한 규칙대로 심판을 보려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하지만 게임하다 보면 합의 안 한 상황이 나올 수 있겠죠?
(네)
샘들이 실수할 수도 있겠죠?
(네)
그럼 그 샘이 곧 규칙인 겁니다. 축구에 관한 올림픽 규칙은 샘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스로인을 두 손으로 했네, 안 했네. 몸싸움을 해도 되네, 안되네, 누가 정합니까?
(샘이요)
그래요. 안전, 성실, 땀은 여러분 것이고 규칙은 샘 겁니다. 자 한 줄로 섭니다.
(어휴, 다른 반 다 나갔네)
(아니야, 1반 아직 반에 있어)
- 교사의 속내
북미나 유럽권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보호자들이 외국학교 운동회를 체험하며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글이나 영상을 어쩌다 보는데, 현직 교사의 시각으로는 요즈음 우리나라 운동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그런 자료들이 보여주는 운동회는 기성세대의 기억 속 운동회에 비해 이렇다 할 준비 과정이 없고, 조촐하고, 승부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며, 학생들이 부담을 갖지 않는 등의 특성을 보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아이들의 운동회도 그렇습니다. 즉 외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의 차이가 아니고, 이민 간 보호자들의 과거와 그 아이들의 현재라는 시간의 차이입니다.
요즈음의 운동회는 외부업체들이 학교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하거나 학년 단위로 간소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성세대들이 기억하는 이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좀 더 범위를 좁혀보자면 2000년대 후로 초등학교를 다녔던 세대와 그 이전의 세대가 기억하는 운동회가 다릅니다. 물론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지역별, 학교별 차이가 있겠지만요.
뙤약볕에 앉아 ‘청군 이겨라’를 외치고 있을 때 천막 아래 부채를 쥐고 한가로웠던 어른들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운동회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 한 편에 작지 않은 거부감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의 운동회가 지역사회 인사와 학부모들을 위한 매스게임을 시작으로 청군과 백군 머리띠를 한 채 소속 집단의 승리를 위한 한판 승부였다면 요즈음의 운동회는 전통 민속놀이(투호 던지기, 제기차기, 윷놀이 등)를 변형하거나 놀이마당(코너 체험-판뒤집기, 공 나르기, 과자 따먹기, 림보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체험하기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진행 자체를 이벤트 업체에 외주를 맡겨 ‘명랑운동회’식의, 승부를 겨루는 것이 주가 아닌, 체육 활동을 하며 즐기는 데 의미를 두는 작은 축제가 되기도 합니다. 승부와 집단성의 자리에 놀이와 흥미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른 많은 교육과정과 더불어 운동회 역시 학생이 주인이 되는 행사가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성세대가 기억하는, 수업 결손을 무릅쓰고 운동회 전 한 달 넘게부터 학생들을 훈련(준비를 넘어 ‘훈련!’)시키거나, 그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규율하고 서로 갈등하는 시간들은 요즈음 학교에는 없습니다.
논문은 이런 변화에 5.31 교육개혁과 전교조가 기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시장논리에 기반한 5.31 교육개혁과 전교조의 참교육 논리는 ‘소비자’와 ‘교육의 주체’라는 다소 다른 맥락에서의 학생에 대한 성격 규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운동회에서 학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운동회가 더욱 수요자 중심적인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강한 교육적 메시지를 던졌다.
이제 교사에게 남은 것은 다시 생활교육입니다. 규율과 복종이 지나간 자리에 학생들의 무질서와 무절제한 욕망이 남아 있습니다. 10년 언저리를 산 아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고 그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교사는 짐짓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며, 폭력과 폭언을 배제한 채 찍어 누르지 않는 권위로 규율하고 배려를 신장하며 이 앙증맞고 때론 가증스러운 여물지 않은 영혼들을 스포츠 정신에 순응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생활교육이야말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논문 - 학교 교육프로그램의 외주화 현상 분석:초등학교 운동회를 중심으로, 이두휴(전남대), 학습자 중심 교과교육연구 제21권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