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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퍼먹는악어 Sep 27. 2023

축제, 학예회

- 축제

- 교실 속 스토리텔링

학교 축제는 학교 단위의 자치입니다. 우리 반은 매주 금요일 하는 게 뭐예요?

(좋아바 회의요)

(자치회의요)

여러분이 한 자치회의 결과로 반 친구들과 쉼터 규칙을 정했고 생일잔치도 했고 마니또 행사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안건을 내서 계획하고 준비해서 진행했습니다. 그건 학급 자치입니다. 여러분이 친구들이 싸우는 것을 말리고 달래는 것, 화나거나 속상한 친구 위로해 주는 것, 아픈 친구와 보건실에 함께 가주는 것, 미술 준비물을 연구실에서 가져오는 것, 모두 자치입니다. 이제까지는 주로 이런 학급 단위의 자치를 했습니다. 그래서 4반 학생은 4반 친구들과 담임인 샘께 책임을 지면 됐어요. 축제는 다릅니다. 축제는 관계를 확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반 학생들이 다른 반이나 다른 학년 학생이랑 같이 부스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철호는 태권도장에서 만난 6학년 민수와 함께 뿅망치 부스를 운영합니다. 이 부스를 우리 학교 학생이나 보호자, 샘들 모두 체험할 기회를 갖습니다. 준비도 담임인 샘과 하지 않고 학교 축제 부스 담당샘하고 같이 했어요. 살구초 4학년 4반 친구, 담임샘하고만 맺었던 관계가 살구 공동체인 살구초 학생, 살구초 샘들, 살구초 보호자들로 넓어진 겁니다. 자치가 뭐라고 했습니까?

(책임지는 거요)

축제는 누구에게 책임져야 할까요?

(살구초 모두요)

맞아요. 그래서 샘은 내일 여러분께 축제를 맡기고 그냥 즐기기만 할 거예요.

(우리 샘 한량)

(편하겠네)

내일은 샘한테 뭐 질문하지 마세요. 샘, 쓰레기는 어디다 버려요? 목마른데 어떻게 해요? 재료가 떨어졌어요. 친구가 놀려요. 공연은 언제 해요? 어디서 해요? 알뜰장터는요? 질문하지 마세요. 스스로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고 친구랑 상의하고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깊이 생각한 다음에 그 사람을 찾아 질문하세요. 평소처럼, 내일도 여러분이 집에 갈 때 즐겁고 만족스러운 표정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자신을 책임지면 됩니다. 울상을 하고 와서 '샘 저는 축제 별로였어요, 공연 시간을 깜빡해서 공연 못했고, 속상한 마음에 부스도 5개밖에 못했어요. 먹거리도 재료가 떨어졌다고 하나도 안 줬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시간을 깜빡했고 기분 조절을 못했어요. 못 먹은 건 운이 좀 없는 거죠 뭐. 괜찮아요. 집에 가서 동생이랑 재밌게 놀래요. 내년도 있잖아요.' 하면 돼요. 이게 책임지는 겁니다. '샘 오늘 저 공연 잘했죠? 부스도 우리 것이 인기 젤 좋았잖아요. 근데요. 누가 방해했어요. 혼내주세요.' 하는 건 안됩니다. 잘하고 못하고, 즐겁고 안 즐겁고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책임을 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활동과 기분을 조절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 친구들과 선후배, 보호자들을 배려하며 어울리는 것. 부스 천막, 재료, 쓰레기 관리하는 것, 뒷정리하는 것, 낯선 돌발 상황에서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 것, 여유를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는 것. 이런 것들이 책임지는 겁니다. 어른한테 칭찬받는 것도 중요치 않습니다. 실패해서 자신에게 실망스러워도 괜찮아요. 스스로 만족하고 반성하면서 오늘 하루를 통해 또 성장하면 됩니다. 샘은 여러분이 준비한 이 좋은 가을날을 즐길 겁니다. 샘의 축제를 방해하지 마세요.     



교사의 속내

실제 축제날 아이들은 훌륭하게 각자의 몫을 해냈습니다. 부스를 책임졌고 서로 도와줬으며 모두 축제를 즐겼습니다. 저는 저의 축제를 즐겼고 여러 부스들을 체험하고 다녔고 우리 반 학생이 운영한 게임 부스에서 게임기를 빌려 한쪽에서 거북목으로 앉아있었습니다. 학생이 '샘, 여기서 게임하고 있으면 어떡해요?' 하며 자꾸 구박하면서도 자기가 아는 엄마가 먹거리 부스 한다며 몇 번이고 어묵 꼬치를 공수해 줬습니다. 노파심에 첨언하자면, 물론 학생들은 저의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요즘은 학교 학예회가 축제로 많이 대체되는 분위기입니다. (학예회는 학생의 예능 발표와 학예품 전시를 주로 하는 특별 교육 활동입니다. 학생들의 학습 과정이나 결과, 능력 따위를 공개적으로 발표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거두는 데 목적이 있다.-교육학 대사전) 축제는 공동체가 소속감을 높이고 유대를 강화하는 놀이 활동을 하는 날입니다. 주로 공연, 부스 활동, 장터 부문으로 나뉘어 운영합니다. 지역 축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지역 축제에 가면, 한쪽에서는 관객이 있든 없든 사회자가 왁자지껄하게 무대를 운영하고, 다른 쪽에서는 각종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부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각종 먹을 것이나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장터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빌려와 학생들 자치와 참여를 극대화시켜 교육적 의미를 강화한 것이 요즈음 유행하는 학교 축제입니다. 학생들 스스로 부스 운영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진행합니다. 무대에 서고 싶으면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연습한 후 간단한 오디션을 거쳐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발표 수준은 중요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수할 수 있게끔 준비했느냐가 관건입니다. 장터도 마찬가지입니다. 판매할만한 중고 물품을 집에서 찾아와서 상인이 되기도 하고 번 돈과 용돈으로 소비자가 되어 맘에 드는 물건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행사 운영 요원들 역시 자발적으로 모집하고 쓰레기나 안전에 관한 사항도 학생 자치회에서 관장할 수 있습니다.       

축제는 기존 학예회가 가진 단점들과 대비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학예회는 공연과 작품 수준이 중요합니다. 학습 과정과 결과를 발표하려니 학생도 교사도 부담이 큽니다. 학예회 발표 수준이 곧 그 반 수준이 되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축제는 학생들 자치 그 자체를 보여주는 장이자 학생, 교사, 보호자가 더불어 즐기는 잔치입니다. 학생과 교사가 평가 부담에서 벗어나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몰입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교육 주체들의 창의성이 발현됩니다. 학생들은 자치로 성장하고, 학생의 공연 결과로 평가받는 부담을 던 교사들은 더 창의적인 축제를 기획하고 보조하며, 보호자들은 자식의 공연 수행 수준에 마음 졸이지 않고 온전히 축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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