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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퍼먹는악어 Jun 03. 2023

평가 1

- 교실 속 스토리텔링

5교시에는 과학 3단원 태양계와 별, 단원평가하겠습니다.

(네?)

(샘, 그거 기록에 남아요?)

허? 뭐라고?

(그거 컴퓨터에 기록해서 졸업하고도 남냐고요?)



-교사의 이야기


학교에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은 성적에 들어갑니다.

(노는 것도요?)

아침에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 친구랑 다투고 이르는 것,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잘 넣는 것, 가방을 바르게 놓는 것, 급식을 깨끗하게 먹는 것, 화장실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이용하는 것, 이런 것들 모두 성적에 들어갑니다. 선생님은 여러분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평가하고 반영합니다. 평소에 항상 맑게 웃으며 인사하던 지선이가 아침에 의기소침하게 샘께 인사하면, '아 오늘 지선이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구나, 무슨 일이 있나 보구나' 하고 평가해요. 그리고 그 기분이 지선이 하루를 망치지 않도록 샘이 지켜봅니다. 눈도 한 번씩 마주쳐 주고 어깨도 일없이 토닥여 주고 일부러 칭찬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심부름도 시켜줍니다. 지선이가 하루를 무사하게 보내면 '아, 우리 지선이가 조금 성장했구나'라고 평가해요. 선생님은 하루 종일 평가하는 사람이에요.

여러분이 평가라고 생각하는 건 국어 몇 점, 영어 몇 점. 초등학교는 보통 평가를 그렇게 점수화해서 가정에 통지하지 않아요.

(아닌데요. 4학년 때는 단원평가 해서 가져갔는데요).

물론, 필요할 땐 하지요. 또 샘마다 스타일이 다른 건 알고 있지요? 어떤 샘은 단원평가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덜하기도 하고. 여러분이 학기말에 가져가는 통지표에는 여러분이 결석은 안 하고 잘 출석했는지, 교과별로 무엇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공부했는지 글로 써놔요. 본 적 있지요? ‘두 자릿수의 덧셈을 할 줄 알고 생활에 적응하여 문제를 만들고 풀 수 있으며...’ 그게 교과학습발달상황이에요. 통지표에는 그거 말고 출석,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이 들어가요. 근데 여러분 보호자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뭘까요?

(행동특성 및.....)

(젤 밑에 평소에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그거요.)

맞아요. 그걸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라고 해요. 학습태도는 어떻고 교우관계는 어떻고 주변을 잘 배려하는지, 태도는 어떤지. 그것에 여러분이 보낸 1년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성적입니다. 선생님 눈에 비친 나. 물론 샘이 한 두 장면을 가지고 여러분을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정 없이 차갑게 여러분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따뜻한 연민의 눈으로 긍정적으로 봅니다.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이 더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샘이 어떻게 반응하면 더 좋아질까를 생각하면서 여러분을 평가합니다.      


-교사의 속내


교육평가의 기능은 크게 교수·학습적 측면과 행정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수·학습적 기능은 평가가 교사와 학습자 혹은 교수·학습 장면을 개선시키는데 쓰이는 것을 말합니다. 교사는 수업 중이나 후에 수업 전 설정한 수업 수준과 양, 방법 등이 학생들한테 적정했는지, 수업 방법이 적절해서 학생 동기를 충분히 유발했는지, 참여를 잘 이끌어 냈는지 등을 평가하고 추후 수업에 반영합니다. 학생은 스스로 혹은 교사가 하는 평가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태도는 적절했는지 등을 평가하고 반성합니다. 석차를 매겨 등급화·서열화하고 평가 결과를 학생 분류와 선발에 쓰는 것은 평가의 행정적 기능입니다. 점수에 따라 반편성을 하거나 상급학교 진학에 쓰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요즈음 공교육계의 방향은 과정중심적 평가이고 교수·학습적 기능을 강조합니다. 이전에 흔히 이뤄졌던 일제고사는 행정적 기능을 강조한 결과 평가입니다. 다시 부활의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결과 평가인 일제 고사는 2010년대 초반에 교육청별로 폐지됐습니다. 그때 수행평가 등의 과정중심평가가 교사의 평가권을 지나치게 높일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과정중심 평가는 교사의 평가권을 오히려 약화시켰고 교사의 권위 약화에 일조했습니다. (초등에 한하는 판단입니다.)


수행평가가 보통 교사의 주관이나 가치 같은 정성적 면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교사의 평가권이 높아진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초등의 경우 그 수행평가를 반영하는 ‘내신’이 없습니다. ‘내신’의 사전적 정의는 ‘상급 학교 진학이나 취직과 관련하여 선발의 자료가 될 수 있도록 지원자의 출신 학교에서 학업 성적, 품행 등을 적어 보냄. 또는 그 성적.’인데, 결과평가로 쓰이는 시스템입니다. 고등학교 내신은 대학 입시에 쓰이고 중학교도 과학고 등의 학교 진학에 쓰입니다. 초등은 다릅니다. 초등 성적표는 평어로 이루어지는데 수ㆍ우ㆍ미ㆍ양ㆍ가 따위로 등급을 나누지 않고 서술형이며 해마다 내려오는 교육청 지침에 따라 타인과의 비교나 부정적 어휘 등은 표기가 불가합니다. 그러니 사실상 보호자나 학생들이 생각하기에 교사의 평가권, 그것이 주는 권위는 없다시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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