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실패
자스마니가 내 자리에 찾아왔다. 말레이시아 지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이다.
짧게 깎은 머리, 옅은 턱수염, 늘 딱딱한 표정을 짓는 그였지만 그날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그는 내 표정을 살짝 살피더니 말레이시아 억양이 잔뜩 묻어난 영어로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고대하던 소식이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바닥을 내밀었고, 자스마니는 약속이나 한 듯 그 손을 세게 쳤다. ‘짝’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을 울렸다.
그날 퇴근할 때까지 몇 번이나 다시 들은, 즐거운 하이파이브의 소리였다.
오래전, 수년 동안 말레이시아 지사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 시절이었는데, 한국사람 하나 없는 외딴 지사에 젊은 직원이 혼자 부임한 것은 당시로선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름 회사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혼자 일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으레 듣는 질문이 있다.
“와, 말레이시아에서 혼자 사셨다니… 골프 원 없이 쳤겠네요?”
내가 골프를 안 친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그 좋은 곳에서 골프도 안 치고 뭐 하셨어요?”
그럴 때면 웃으며 “바빴어요”라고 둘러대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씁쓸한 기분은 피할 수 없다.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 한국 사람도 거의 없는 환경이었다. 퇴근 후든 주말이든 혼자만의 시간이 넘쳐났고 모든 것이 저렴했다. 마음만 먹으면 골프는 물론이고, 어떤 취미 생활이나 자기 계발도 실컷 해볼 수 있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글을 썼다면 몇 권의 책은 이미 나왔을 것이고, 영어가 공용어처럼 쓰이는 말레이시아니, 영어를 제대로 공부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다음 업무를 미리 준비하고, 성과 개선 방법을 하루 종일 고민했으며, 독서를 해도 회사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책만 골라 읽었다. 대충 하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일을 완벽하게 하겠다며 두세 시간씩 붙들고 있었고, 안 해도 될 일까지 일부러 만들어가며 일했다.
수십 명이 모이는, 부담이 큰 이벤트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직접 제안하고 개발하고 리딩했다. 교육 담당이 아닌데도 현지 직원들을 위한 교육 자료를 혼자 50개 가까이 만들었다. 다른 부서의 동료가 무언가 부탁하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굳이 PPT로 포장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당연히, 야근을 안 한 날이 거의 없었다.
내가 모범생이어서 그런 건 아니다. 일종의 ‘오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처음 만들어준 주재원 케이스이니만큼 보란 듯이 잘 해내 멋진 성과를 남기고 싶었다. 내가 실패하길 바라고 있을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기나긴 커리어를 생각해 봤을 때 그때야 말로 ‘올인’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노력한 만큼 성과는 있었다. 내가 일하던 부서는 몇 번이나 역대 최고 실적을 냈고, 덩달아 나도 매년 최고 성과등급을 받고 연봉도 많이 올랐다. 당시는 정말 하루하루 회사 다니는 게 즐거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십 수년이 훌쩍 흐른 지금 보면,
최고 성과를 만들어내던 우리 부서는 조직개편으로 타 부서와 병합된 지 오래고, 함께한 현지 직원들 대부분은 이미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자스마니도 회사를 떠났다. 그때 내가 고심하며 도입한 업무 시스템들도 리더십이 바뀌며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들었다.
그뿐인가. 나를 주재원으로 보내줬던 한국의 임원들,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말레이시아에서 만들어낸 성과를 크게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던 임원들도 다 은퇴해 버렸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왜 그렇게까지 일했던 걸까? 이렇게 다 사라질 줄 알았다면 달랐을까?
그때가 내 커리어의 황금기였던 것은 분명하다.
내 역량도 크게 성장했고, 이후 승진과 이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투자. 내 몸값을 높이기 위한 공부. 좀 더 다채로운 삶을 위한 취미.
몇 년 지나면 사라지고 잊힐 회사일이 아닌 오래오래 남을 더 가치 있는 것에 시간을 썼어야 했다.
요즘 MZ세대 직원들은 자기 것을 잘 챙기고, 공과 사에 철저하다고들 한다.
실제 내 조직에 있는 이십 대나 삼십 대 초반 직원들만 해도 야근 한 번 시키기 어렵다.
급한 프로젝트가 있어 젊은 직원에게 주말에 일을 좀 시킨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회식 자리에서 “그때 주말에 일해서 너무 억울했어요”라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술기운을 힘입어 한 말이겠지만, 그래서 더욱 진심일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한창 일할 때의 내 나이와 거의 비슷한 나이의 직원이었기에
그 말을 들으면서 과거의 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말에 일어나면 회사 업무부터 살펴보던 내가 떠올랐다.
매일 통근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던 내가 생각났다.
단순히 과거의 내가 틀렸고, 이 젊은 직원이 맞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내가 그런 ‘억울함’ 없이 일했기에 혼자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영악했더라면, 사라질 것들을 가려볼 눈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회사일만 열심히 한 것' 외에 남은 게 없는 불안한 인생을 살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실패한 열한 번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