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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글] 회사사람들과의 술과 골프

Bridge - 덧붙이는 이야기

by 박기주

(브런치북 '나는 왜 실패했는가'의 2부와 3부 사이에 '쉬어가는 글'로 추가하는 글입니다)


저는 예전에 술을 참 많이 마셨지만 최근에는 즐겨하지 않습니다. 자주 마시지도 않고, 예전처럼 3차, 4차까지 가면서 밤을 새우지도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따라주지 않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술자리가 즐겁지 않은 것이 더 큰 이유입니다. 억지로 웃고 떠드는 것보다 혼자 쉬는 것이 훨씬 값지게 느껴집니다. 이렇다 보니 저와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는 분명 ‘재미없는 사람’이겠지요.


저는 골프도 치지 않습니다. 예전에 좀 쳐보긴 했지만 오래지 않아 금세 관뒀습니다. 주위에서는 사회생활에 골프가 꼭 필요하다며, 앞으로 더 높이 올라가면 하루라도 일찍 시작해야 한다 권합니다만 저와 잘 맞지 않는 스포츠를 억지로 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제 와서 시작하기에는 많이 늦은 감도 있습니다.


저는 담배도 하지 않습니다. 단란주점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며, 당구도 서툽니다. PC방에 가본 지도 오래되었네요. 이렇게 보면, 저는 회사에서 남자 선후배 동료들과 인간관계를 쌓을 어떠한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셈입니다. 높으신 분들이나 고객을 접대할 기술도 없으니 ‘사내 정치’를 하기에는 끔찍할 만큼 불리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저는 회사에서 왕따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승진은커녕 부서나 직무 이동에 있어 불이익만 받을 것 같아 보이죠. 늘 혼자서 밥 먹고, 사내 외 소식에 둔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저만 빼고 진행되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저는 여러 조직을 옮겨 다니면서 긴 커리어를 이어왔지만, 술과 골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를 본 적은 없습니다. 고과 평가에서는 늘 평균 이상의 등급을 받았고 승진도 빠르게 해 왔습니다. 사람들하고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친하게 지내는 동료와 선후배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듯 저는 만족스러운 커리어를 가꿔오지 못했고, 그것을 ‘실패’라고 규정합니다만, 술이나, 골프, 담배 같은 것들이 제 실패의 원인이라 보진 않습니다. 이 책의 본문에 ‘술을 더 마셔야 했다’, ‘골프를 쳤어야 했다’, ‘담배를 끊지 말았어야 했다’와 같은 글이 없는 것도 그런 연유입니다. 저의 실패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 특히 애주가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과 그렇게까지 가까워져야 할까요? 이해관계로 억지로 어울리는 관계는 이해관계가 없어지면 순식간에 끊어지는 데 말이죠. 물론 회사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첫 회사의 동기들하고는 아직까지도 친하게 지냅니다. 그렇지만 그건 이해관계가 엮여 있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술친구가 되거나 골프 친구로 가까워지면 업무에 있어 알음알음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기도 합니다. 회사일이 모두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관여하고 결정하는 일도 많은 만큼, 사적인 모임에서 형동생 하는 관계로 발전하면 좀 더 배려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커리어에 있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지금 회사만 해도 술 한잔 안 마시는 직원들도 많고 골프를 치지 않는 임원들도 제법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포지션에 있는 정말 높은 분들은 술 자주 마시고, 골프 같이 친 사람들에게 혜택을 더 주고 그러지도 않더라고요. 지난달에 같이 골프 친 부하 임원을 이번 달에 내치는 게 높으신 분들이더라고요. 그러니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을 거잖아요. 결국 술을 자주 마셨느냐, 골프를 같이 쳤느냐가 핵심은 아니라는 겁니다.


아, 그렇다고 절대 술과 골프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사람과의 술자리는 저도 너무 좋아합니다. 골프도 제대로 배우면 정말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회사 생활을 위해 억지로 싫어하는 술을 마시고, 하기 싫은 골프를 배울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술과 골프를 즐기고 회사 생활에 잘 활용했으면 실패하지 않았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쓴 여러 실패의 이유를 해결하지 못했더라면 제가 아무리 말술이어도, 프로 골퍼 못잖게 골프를 잘 쳤어도 지금의 제 인생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본문이 아닌 쉬어가는 글로 남겨둡니다. 술과 골프는 저의 실패의 이유는 아니었으니까요. 독자 여러분들이 회사를 다니며 술과 골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볍게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표지 이미지는 Vecteezy.com에서 구입했습니다. No attribution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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