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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왜, 자꾸 뻐꾸기가 생각나는 걸까 171

by 불량품들의 사계 Feb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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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뻐꾸기가 생각나는 걸까



2

성길씨는 나를 대놓고 두 번 잘랐다. 김장할 때 사람들 다 있는데 나랑 여동생처럼 지내고자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애를 낳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양념을 곁들였다.  그는 우리 집에 온 지인들을 전부 아가씨라고 부른다. 나는 누구는 결혼했다 안 했다고 일일이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눈이 푹푹 오고 찬바람 불먼 내 친구들이 안 오니까 나헌테 소주 한잔 허면서 드라이브 허자고 허고, 내가 풀치랑 친허게 지내먼 풀치에게 슬리빠 던지고, 오늘도 신문 오기 전부터 마당에 서서 빨리 옷 바꾸러 가자고 재촉허고, 나는 부실이처럼 추위도 누구보다 더 타먼서 아침부터 저 태우고 꾸역꾸역 운전허고 왔더니,

 나를 코앞에 두고 옆집이랑은 여동생처럼 지내자고 노골적으로 나를 짜르고, 에라 이 더럽고 나쁜 놈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아저씨 하고 맞을 만한 친구 있으면 말할랑께 집에 가게요.”

나는 의자 옆에 서서 속하고 다른 말을 했다. 그는 갑자기 왜 화를 낼까 하는 표징으로 일어났다.   

   

나는 그가 계산을 하는 동안 시동을 걸었다. 차를 빼 냅다 달렸다. 백미러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술 취해 다리는 말을 안 듣지, 스텝은 꼬이지, 손에 꼭 쥔 쇼핑백은 달랑거리지 죽어라 뛰었지만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내가 저를 놔두고 갈까’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떼어놓고 집에 가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뛰다가 미끄러져 발목이라도 삐면 병원에 싣고 다니는 것은 내 몫이다. 오십 미터쯤에서 차를 멈추었다.

“아따, 시동이 잘 안 걸 린 것 같아서요.”

그는 술 때문에 벌건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그는 조수석에 앉자마자 눈치 없이 말했다.

“여자 꼭 소개해 주세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손도장을 찍었다.

“세상 살아보니까 똑똑하고 사나운 여자가 나한테는 필요해요.”

‘그럼, 나는 똑똑 않다는 말인디. 즉 현명 허지도 않고.’

그는 나의 마음은 아랑곳없었다.

‘야, 내려.’ 하면서 발로 밀어버리고 싶었다.

성길씨가 장가 못 간 이유를 오늘 확실히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눈칫밥을 그렇게 먹었다고 해놓고 아직도 된장인지 똥인지 구분 못 하고 있다.

“똑똑허먼 아는 게 많아 감당 못할 텐데요.”

이 말 한마디라도 하고 나니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진짜 여자를 찾아 나서면 나는 오지랖 중에 상 오지랖이겠지.   

   

그날 밤, 성길 씨는 8시가 넘었는데 족발이 먹고 싶다고 시장을 가자고 했다.

“족발 사다 소주 한잔 합시다.”

‘아니, 나를 뭘로 본 거여, 환장 허겠네.’     

나는 깡깡 얼은 압록강을 건너온 사람처럼 싸매고 나갔다. 시장 골목을 돌아 돌아갔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족발집으로 들어갔다 성길씨 여동생이 일하고 있었다. 성길씨 집에 한 달에 한 번 전기세 계산하러 오는 동생이었다. 그녀는 내가 오는 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성길씨는 자기가 나를 설득해 지장물조사받게 했다고 동생한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성길씨는 여동생이 족발을 포장하는 동안 오뎅을 시켰다. 성길씨는 베어 먹던 오뎅을 그릇에 그대로 담갔다. 그리고 빼내어 먹었다. 나도 먹으라고 하나 집어 줬다. ‘옴매’ 그가 손으로 입에 넣으라는 시늉을 했다. 정말 먹기 싫었지만, 먹었다.  

‘그래 며칠만 참자’ 내가 이렇게 성길씨가 하자는 대로 한 이유가 있다.

성길씨가 나를 이 집에서 내보내려고 지난가을 친절을 베풀 때 전략이었던 것을 안 후 어떤 호의에도 나는 그를 의심부터 했다.    

 

얼마 전 부동산 하는 친구에게 알아봤었다. 주인이 세 든 사람에게 두 달 전에 들어와서 산다고 하면 나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법의 빈 곳이다. 세 든 사람 위한다고 만들었지만, 주인이 들어와서 산다고 하면 재계약이 안 된다.

그 시간이 지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술을 같이 마셨다.      

드디어 성길씨가 나를 내보낸다고 해도 ‘그렇게는 아니 되옵니다’ 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아침에 눈을 쓸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대책위원회에서 그렇게 지장물조사받지 말라고 하는디도 몰래 헐라고 그러요. 글고 LH에 지장물조사받으먼 내께 어떤 이익이 있는지도 알아보고요.”

나의 돌변한 태도에 그는 놀라워했다.

“지장물조사받기로 날 잡았는데 갑자기 취소하면 나보다 어쩌라고.”

“내가 취소 허께요. 글고 내가 지장물 조사받는다고 딱 잘라 말 헌 것도 아니고.”

성길씨는 나를 억지로 내보낼 정도로 독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

성길씨가 빗자루를 창고 앞에 세우며 말했다

“옆집은 구정에 집에 안 가요?”

“네, 안 가먼 사장님하고 술이나 한잔 허게요.”

“술 끊었어요.”

“네에.”

그는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성길씨가 뚜껑 따진 페트병 1.6 리터 맥주를 가져왔다. ‘김샜다는 거여 뭐여’ 김 빠진 맥주를 굳이 나에게 준 것은 ‘나 지금 열받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성길씨가 나에게 선심 쓸 때, 딱새 집에 알을 낳고 딱새 새끼들을 밖으로 떨어뜨리는 뻐꾸기와 LH가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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