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참 예쁜데 말이야.
어릴 적 처음으로 이사 간 집에는 화단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지도, 그렇다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도 않은 것이, 있을 수 있는 건 모두 있었던 듯합니다. 지붕을 따라서 포도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한여름에는 넓적한 이파리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 마루가 그다지 뜨겁지도 않았을뿐더러 늦여름이 되면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가 참 예쁘게 익어갔습니다. 달거나 맛난 포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때깔 좋은 포도는 제법 제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대문 앞에는 무화과나무도 있었습니다. 마치 눈물방울이 확대된 모양을 한 무화과는 겉 색깔이 변할 무렵 따먹으면 참 달았습니다. 그렇게 과실수 두 그루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꽃나무입니다.
입구에는 장미 나무가 있었고 하얀 겹꽃의 무궁화도 있었습니다. 책에서 보던 연보라색의 흔한 무궁화나, 하얀 홑꽃에 연지곤지를 찍은 듯한 무궁화가 피기를 바랐지만, 우리 무궁화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풍성함을 자랑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보는 무궁화는 참 예쁩니다. 제법 귀티도 납니다. 언젠가 해미읍성을 들렀다가 참으로 많은 종류의 무궁화를 보았습니다. 무궁화가 그리도 많은 품종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하긴 명색이 나라꽃이니 당연한 대접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들어 귀가하는 내내 마음이 좋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예쁜데 그러다 보니 누구든 자기 마음에 제일 예뻐 보이는 꽃 하나쯤은 다 품고 삽니다. 저도 그러합니다. 어릴 적에는 뭐가 제일 좋아? 물으면 무엇이라 단언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다른 이름을 대는 나를 보며 그 이후로는 마음에 품은 첫사랑의 꽃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내내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장미가 그러하고 능소화가 그러하며 접시꽃과 무궁화가 그러합니다. 거기에 배롱나무가 아닌 백일홍이 새롭게 들어왔으며 초등학생 때부터 자리한 칸나도 여태껏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서 보낸 꽃이 하나 있습니다. 정을 붙여보려고 해도 내 마음의 저장공간이 너무 협소하여 마음처럼 자리 잡지 못하는 꽃이 하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름이 아닌 맨드라미입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어릴 적 뒤 안에 있던 장닭들이 서열 싸움을 하느라 요란하게 폴짝거리며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승부가 난 후에 패배한 장닭의 볏 끝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맨드라미는 영락없이 그 볏을 닮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은 타오르는 양초의 불꽃같은 맨드라미는 나름대로 볼 만합니다.
아내는 곧잘 맨드라미의 편을 듭니다. ‘맨드라미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미워하지 마!’ 모든 꽃을 아내와 같은 마음으로 예뻐하고 사랑해 준다면야 참 좋겠지만 나도 사람이라 그냥 내 눈에 좋은 것들만 예뻐하는 속물인가 봅니다. 나름대로 척박한 땅에서 생명을 유지하느라 애쓰는데 격려하지 못할망정 이렇게 싫은 티만 내고 있습니다.
맨드라미의 꽃말은 치정, 괴기, 감정, 영생,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고 해요. 나를 봐주는 인간들이 붙여준 꽃말일 테지만 이렇게 맨드라미는 여러 꽃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꽃은 그들의 언어와 몸짓으로 우리를 향하는데 나라는 사람은 어설픈 내 기억의 조각 하나 때문에, 예쁜 맨드라미를 하나하나 품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아도 자세히 보아도 꽃은 참 예쁩니다. 맨드라미도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