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나 있으려나 몰라요.
사는 게 힘들어 주변을 둘러볼 여력이 없는 집을 제외하고는 –아니 간혹 집착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조금은 여유가 있는 집안은 거의 다 그랬을 것이라 단정하고 싶은 거 중 하나가 바로 족보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소위 뼈대 있는 집안이라 입에 올릴 때마다 나오는 주제가 바로 본관(本貫) 파(派) 몇 대 손(孫)으로 시작하고 끝이 납니다. 아주 희성(稀姓)이라든지 스스로 미천한 집안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예 이야기의 주된 흐름에 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최소한 우리 윗세대까지만 해도 이렇게 족보 있는 집안 이야기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뿌리 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치 강물이 기원하는 샘이 있는 것처럼 태초로 종착하는 그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마저도 우리는 조상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저 신앙에 가까운 맹신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내가 이루지 못한 세상의 명성을 조상에서나마 찾으려고 애씁니다. 마치 그게 족보의 기능인가? 싶을 정도로 명성 좋은 조상을 일일이 열거하는 수고쯤은 마다하지 않습니다. 마치 내 부모가 그러한 양, 조상의 업적은 늘 가까이에 존재하는 양 이야기합니다.
역사를 배우면서 늘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족보가 과연 진짜일까?입니다. 여기에서 진짜라는 의미는 조작 없이 대대로 나에게까지 왔느냐는 의미입니다. 알다시피 조선시대 성과 이름을 온전히 갖추며 산 계층은 전체 인구의 몇 % 밖에 안된다, 도중에 대를 잇기 위해 양자도 제법 들였다던데 사실 그때부터 정통성은 깨지는 거 아니냐, 외세가 침략하여 어쩔 수 없이 낳게 된 아이는 어느 호적에 올라갔을까? 등등의 의문이 생겼습니다. 실제 요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유전자 검사 기구로 적용해 보면 주변의 다양한 지역이나 나라의 유전자도 제법 포함된다고 해요. 그런데도 우리는 생긴 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단일민족이라는 허울 안에 갇혀 살았습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에 회복한 지역인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의 이민족(異民族)은 자연스레 우리나라로 편입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전쟁이나 여타 이유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이런 경우는 철저히 배제했을까? 늘 불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제 제 이야기로 넘어가려 합니다. 저는 가장 많은 성씨에 가장 많은 본관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 어디를 가도 제 본관과 파에 속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파가 다른 분까지 합하면 전체 1위를 고수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 시조 할아버지 수로왕(首露王)의 위세가 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제 몸의 아주 조그마한 구석에 수로왕의 흔적이 티끌만큼이라도 남아 있을까요? 확률로 계산해 보아도 희석되고 희석되어 흔적이 남아 있는 거 자체가 불가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조상을 이야기하고 내 가문을 이야기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본관이 어디인지, 더 나아가 파(派)가 어디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이제는 그마저도 탓할 수도 없습니다. 조상의 업적은 조상의 몫일뿐 내 자랑은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2:9-12의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냥 이 말씀에 기대어 살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