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많아도, 없어도 힘들어요.

극과 극을 경험하고!

by 김욱곤
제가 근무하는 병원의 수술실입니다.



이번 주 특히 오늘처럼 수술이 한꺼번에 몰려있는 날은 사실 몸도 마음도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고 가는 동선도 길 뿐 아니라 이 환자 저 환자 신경을 쓰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말 모릅니다. 나도 나지만 간호사들의 일은 더 많기도 해서 실제 뛰어다닌 거리로만 따진다면 상당히 긴 거리로 계산이 잡힐 것입니다.


이렇게 바쁜 날에는 언뜻 드는 생각이 ‘일거리가 적으면 좋겠다.’ 싶지만, 어지간히 내공이 쌓인 분들은 그것이 딱히 좋은 게 아니라는 건 익히 아는 일입니다. 적당히 일은 있어 주어야 월급 받는 직원의 입장에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기에 몸 편한 게 우선이냐? 맘 편한 게 우선이냐? 고르라면 당연히 맘 편한 걸 골라야 할 것입니다. 단지 경영자가 생각하는 높이와 직원이 생각하는 높이는 서로 다르기에 앞서 전제한 ‘적당히’라는 기준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2000년 초반의 일입니다. 병원에 취직하고 있던 때의 일이지요. 하루는 거짓말처럼 예약된 수술이 단 한 건도 없던 날이 있었습니다. 퇴근까지 응급수술조차 한 건도 없었으니 우리 사이의 은어처럼 퍼펙트한 날이었습니다. 오! 이런 날도 있네? 하며 좋아했지만 그런 상황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더니 결국 주말을 포함, 여드레 내내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수술이라고 해야 국부 마취로 충분한 소수술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말 그대로 개점휴업이었던 셈입니다.

坐不安席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이런 날은 두고 쓰는 말이었던 모양입니다. 월급을 받는 직원도 이러한데 주인인 원장님의 기분은 어떠실까? 싶어서 정말 편치 않은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사실 그런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면 여러 가지의 감정이 외줄을 탈 듯합니다. 感情移入, 易地思之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의 느낌을 알아내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 당시 저는 원장님께 힘이 되는 말이나 어떤 행동도 해 드린 기억이 없습니다. 기껏 나눈 대화라야 “면구스럽습니다.” 정도였습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닐뿐더러, 어떤 행동이나 말이 정말로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자신이 없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타자(他者)를 위로한다는 게 이래서 어려운 일입니다.

야고보서 2:16-17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처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 주는 게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가끔은 따뜻하고 온화한 말 한마디로도 누군가의 生死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말과 행동을 적절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제껏 살아온 날의 후회보다는, 살아갈 인생 희망으로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네, 그리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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