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여고생.
잠깐 같이 생각할 거리의 글입니다.
2004년의 일입니다. 몸살이 나서 끙끙 앓다가 약이라도 사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약국을 들렀습니다. 약 봉투를 받고 계산하려는 순간 여고생 둘이 당당하게 약국 문을 박차고 들어섭니다.
"아저씨. 피임약 좀 주세요."
나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저 말이 저렇게 당당할 일이야?
약사님의 톤은 의외로 차분했습니다.
"피임약은 처방이 있어야 해. 처방전 있니? 학생인 듯한데 피임약은 왜? 심부름이야?"
"아~~ 오늘 밤에 남자친구랑 오랜만에 한 번 하기로 했는데 꼭 필요해서요."
저와 약사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약사님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학생인데 좀 그렇지 않아?"
이어지는 학생의 말 한마디에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18. 약이나 팔 일이지 John나 말 많네. 그니까 약 팔 거예요, 안 팔 거예요?"
"그냥 가라. 나도 어른인데 애한테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다. 그런 돈 안 벌어도 된다."
참 존경스러운 어른의 대답이었습니다.
여학생 같지 않은 그 애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욕을 하며 문을 나섰습니다.
요즘이라면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면 어떨까요? 더 할까요, 아니면 나아졌을까요?
그 아이를 탓하기 전에 내가 어른이 되어야겠다 싶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