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동박사였던 시절
(이미지출처:블로그 추억의 편린들) 담배를 무척 좋아했던 평소의 모습입니다.
천안에 이사를 오고 나서 가끔 다니던 시내의 산(봉서산)을 오랜만에 다녀왔습니다. 헬스클럽을 다닌 이후로는 주로 주말에 맞춰 다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부지런한 분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이른 아침인데도 제법 많은 분이 내려오는 중입니다. 여름에 산을 오르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산의 푸르름을 보는 것은 기본에 해당하고 덤으로 새들의 소리, 바람의 시원함, 풍부한 피톤치드의 香이 그것입니다.
오늘은 문득 학교에 다닐 적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가 내내 입안에 맴돌았습니다. 박태준 선생이 작곡하고 양주동 선생이 시를 쓴 “산길”이라는 노래입니다.
산길을 간다. 말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해는 져서 새소리
새소리 그치고
짐승의 발자취
그윽이 들리는
산길을 간다. 말없이
밤에 홀로 산길을
홀로 산길을 간다.
고요한 밤 어둔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고요한 밤 어둔 수풀.
가도 가도 험한 수풀
별 안 보이는 어두운 수풀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험하다.
산길은 멀다.
1960-70년대에 석학(碩學)으로 불리던 양 박사는 동국대학교에 근무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교과서에 글이 오르면 지은이의 프로필 정도만 알고 있던 시절, 좀 더 관심이 가고 좀 더 알고 싶었던 분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라디오방송에 고정으로 나오시기도 하고 TV에도 종종 나오시기도 했는데 그 입담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자칭 국보 1호라고 말할 정도로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면모도 가지신 분입니다.
당시를 사셨던 어른이나 학자들도 본인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모두 양 박사의 그런 의견에 동의했을까? 의문도 가져보고 나름대로 판단해 보려 노력은 하는데, 학문적인 업적이나 연구 결과로 놓고 보면 그 분야에서 업적을 상당히 쌓은 분이라는 평가를 받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릴 적 내 소견으로는 그다지 겸손한 분은 아닌 듯하다 싶었습니다. 평가라는 게 자평(自評)보다는 남들이 해 주는 게 신빙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존감과 자만심은 뭐가 다른가? 이 화두는 세대가 바뀌어도 늘 새롭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자존감 또는 자아존중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위키백과) 반면, 자만심이란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는 마음’이라 정의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
결론적으로 그 기저에는 본인의 성취에 대해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 그런 차이일 수도 있겠습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추슬러 알리는 것이 참 필요합니다. 나 스스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랑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부끄럽고 쑥스럽다는 이유로 재능을 숨겨두는 것 또한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神殿) 현관 기둥에 새겨졌다는 유명한 명구인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아는 것! 남이 나에 대해 아는 것! 이런 명제가 좀 더 정확하다면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고래(古來)로 나에 대해 안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현자(賢者)가 이를 두고 고민해 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그래도 쓸모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잡아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내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물으며 보냅니다. 내 평생 남들에게 좋은 평을 들으며 살기 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의 평가에 一喜一悲하지 않으려 노력도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평생의 꿈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주어진 인생 어떻게 색칠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