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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May 18. 2023

한번 엎어 봐!

보리는 다 어디 갔어?

(이미지출처:약토마을 사람들) 지금 보면 기가 막힐 일이죠?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도시락을 쌀 때마다 어머니들의 번거로움이 극에 달하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식량의 자급자족이 어렵던 시절, 혼분식 장려 운동이라는 국가정책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말 그대로 쌀과 보리 또는 콩, 여타 잡곡이 일정량 이상 섞이거나 아니면 분식을 장려하는 정책적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도시락에도 그 정책이 일률적으로 적용됐습니다. 점심시간마다 담임선생님께서 일일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검사한 후에 밥을 먹게 했습니다. 쌀밥만 싸 왔다고 어떤 벌칙을 받았는지 거기까지는 기억이 없고 일종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친구끼리 온갖 아이디어가 난무했습니다. 당시 밀가루 배급이 일부 이루어지던 시기였기에 빵도 무난하게 통과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이게 조금은 슬픈 기억이었던 것이, 집안 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친구들의 도시락은 저절로 혼식이었기에 쉽게 열리는 반면 집에서 농사를 짓거나 형편이 그나마 나은 집에서는 위의 보이는 부분만 보리를 깔아 주고 나머지는 쌀밥을 담아주곤 했다는 사실입니다. 매번 검사하던 선생님은 정확히 두 부류로 갈립니다. 그냥 못 본 척 지나가시거나, 아니면 숟가락으로 반드시 뒤집어 보라거나!     


중1 때 담임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교무실에서 도시락 검사하라고 보내시면 교실에 들어와 한마디만 하셨습니다. “어서 먹어라. 배고프겠다!‘. 그렇게 잠깐 앉아계시다가 교무실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슬하에 우리 또래 이상의 자녀가 있으신 선생님이셨기에 우리에게 훨씬 여유롭게 대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자녀의 모습이 중첩되어서 그러셨던 것일까요? 그런 선생님들의 진심은 어린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도 더 이상 도시락 검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식량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졌다고 선언된 이후이니 1970년대 후반부터나 될 것입니다. 어릴 적, 우리나라의 쌀 품종은 통일벼만 있는 줄 알았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클수록 일본은 이미 수확량이 아니라 쌀의 풍미에 초점을 맞추어 품종개량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요즘은 전 국민의 쌀 소비량이 점점 준다고 하지요? 농사짓는 인구도 줄고 차차 고부가가치 품목만 늘어간다는 소식입니다. 하긴 저부터도 젊은 시절에 비해 밥의 양도 줄었을 뿐 아니라 당뇨 때문에 백미보다는 현미, 보리 등등 잡곡 위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도 품질로 승부를 보는 시대를 사는 셈이지만 농사짓는 사람들의 근심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이제는 급식이 보편화되고 도시락이라는 단어는 이제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판매하는 품목으로 접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내가 만약 교사가 되어 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간다면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교무실에서 하라는 대로 충실하게 검사를 했을까, 아니면 내 자식 돌보듯이 못 본 척도 해주는 맘씨 좋은 선생님이었을까요?     



세상을 살면서 내가 재량껏 할 수 있는 범위가 따로 정해져 있진 않을까, 궁금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은 무언가를 결정하고 적용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렇기에 사는 일이 매 순간순간 도전이고 시험입니다. 어릴 적 도시락에 관한 추억이 이렇게 나를 깨우치고 가르칠 일이었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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