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를 위한 희생인데 말입니다.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이미지출처:네이버) 전쟁은 상이군경을 낳고...


어릴 적 동네의 골목 어귀에서 친구들과 놀다 보면 간혹 낯선 사람들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옷은 허름하고 세파에 찌들어 얼굴은 까무잡잡한 데다 주름도 많은 그런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은 그때마다 무섭다고 도망을 갔습니다. 집에 들어오고 조금 지나면 방금 본 그 아저씨가 마당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몇 집에서 퇴짜를 맞았는지 말없이 그냥 서 있기도 하고 밥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마당에 놓인 평상에 털썩 앉는 분도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들의 행색과 무례함을 싫어하셨지만, 십중팔구 밥 한 상을 차려 내놓으셨고 팔을 다쳐 의수를 찬 그들 모습을 우리 남매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가끔 주머니에 돈이 있으시면 돈을 넣어주기도 하셨고 사람들은 그들을 상이군인이라 불렀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주위에 그런 대접 한 번 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느끼는 감정은 내가 느꼈던 그것과 거의 같았고 그들을 도우셨던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던 것도 거의 같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내 부모와 친구들의 감정과 같았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3~4학년쯤 되었나 봅니다. 하교(下校)하던 길에 저 앞에서 큰소리가 났습니다. 아저씨 한 분이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성을 보며 혼을 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이 말이야. 몸을 써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동냥이나 하고.” 당시 혼나고 있는 분의 양손은 이미 갈고리 모양의 의수가 차여 있었습니다.

어린 나와 친구들은 혼내고 있는 아저씨를 향해 너무 한다고 입을 삐죽거리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그 아저씨의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동냥만 하고 다닐 것인가? 무엇이라도 하다 보면 길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들이라고 왜 결심하지 않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선진화의 척도로 봅니다. 육체적인 불편이야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요, 이외의 부분에서 순간순간 배려받는다면 생활에서 초래되는 불편은 많이 줄 것입니다. 이는 사회 전반의 구조, 건물, 대중교통의 편의 등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특히 공공(公共)의 이익을 위해 수고하다가 위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예우가 형편없이 미흡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결국 우리의 친척이요 자녀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대접받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나만 잘 살면 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꿈꿉니다. 이는 물질이 풍부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배려가 넘치고 온정이 넘치며, 진실을 말해도 그것이 자랑이나 자만이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송곳이 되어 남을 찌르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분명 지금 현대를 살아가지만, 마음은 옛날이 더 좋았다는 추억에만 매달리는 그런 날이 아니라, 밝은 희망의 날을 기대하며 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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