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이런 열정이 남아 있을까?

젊을 때는 멋모르고 했는데 말입니다.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이미지출처:닥터로 의학전문대학원 의대 mdeet 의전원 치전원 의대편입 meet)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께서 종종 하시던 말씀이 오늘은 귓가에 맴돕니다. '목사라면 언제 어디서든 예고도 없이 설교를 부탁해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내용을 최소 두어 개 정도는 갖고 살아야 한다." 늘 주일설교, 삼일 예배 등등의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끄덕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그마한 원고 하나를 쓰려해도, 아니 그를 떠나 페북 타임라인에 포스팅 하나를 하려 해도 적잖은 산고(産苦)가 필요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목사라 쓰는 대신, 그 자리에 나의 직업인 의사라 쓴 뒤에 '나는 과연 무엇을 늘 준비하며 품고 살아야 하는가?' 반문하며 삽니다. 걸어 다니며 차를 타고 다니며, 모든 것을 갖춘 병원에서도 가끔은 약이나 기구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있을 터인데 하물며 그렇지 않은 곳에서 나는 무엇을 준비한단 말인가?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할 것인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사실 아픈 사람에게는 실제적인 도움이 더 필요할 터! 마음만으로도 아픈 것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2주 전에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3 학생들을 상담해 달라는 간호부장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2018년) 아무런 예상 질문도 없고 학생들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나의 한마디 한마디가 참 중요한 영향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아빠로서, 더 나아가 내 아들딸로 여기고 해 주리라고 결심했는데, 상담을 모두 마치고 웃으며 인사하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큰 안도를 했습니다. 나름대로 원하는 대답을 들은 모양이다 싶어서 말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담! 아이들의 꿈! 이 묘한 상관관계에서조차 나름대로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아들도 부디 따스한 마음을 가진, 그리고 뱀의 머리를 가진 의사가 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적절한 연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기억을 좀 끄집어내려 합니다. 아들이 어릴 때 유명한 온천탕에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온천욕을 다 마치고 아이와 함께 나오려는데 탕의 입구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궁금하여 가 본 그곳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한 분이 기운 없이 누워 계셨습니다. 부르는 말에도 반응도 없고 눈도 뜨질 않습니다. 다행히 숨은 시원하게 잘 쉬시는 걸로 보아 잠시 정신을 놓으신 듯했습니다. 혹시 사우나에서 나오셨나 물었더니 나오시다가 그대로 쓰러지셨답니다. 바로 다리를 올리고 너무 차갑지 않은 수건으로 마사지를 해드렸더니 다행히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이런 경우는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기도 하지만 하루는 시장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어느 지적장애인 청년에게 크게 맞으셨습니다. 이유야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요, 쓰러진 할아버지는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찧으셨습니다. 숨결은 얕아지고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119를 호출하도록 부탁한 뒤 기도 확보에 신경을 써드렸습니다. 사실 할아버지에게 다가가기까지 엄청나게 고민했습니다. 다른 거는 모르고 자칫 물에 빠진 사람 구했더니 가방 내놓으라는 일이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응급으로 뇌수술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최종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의사로서 일종의 할 일은 다했다 싶어 안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겪은 마지막 경험입니다. 오월 어느 날입니다. 쉬는 날인 걸로 보아 아마 어린이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친한 집 다섯 가정이 모여 도란도란 놀다가 귀가하는 길은 차량으로 많이 붐볐습니다. 그대로 길에 주차하다시피 서 있는데 서너 대 앞에서 어른들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길 건너편으로 건너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과 부딪혔습니다. 당연히 그 여자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그를 지켜보던 어른들도 덩달아 놀랄 판입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저는 그냥 반사적으로 튕기듯 뛰쳐나갔습니다. 의사임을 밝히고 아이를 살펴보니 무릎 부위를 만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골절인 듯했습니다. 역시 119를 부르고 부목 처치한 후, 응급실로 전원 했습니다.


다행히 이후로는 길에서, 아니면 공공장소에서 비슷한 일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나에게 비슷한 일과 맞닥뜨린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의사다. 밝힐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내 갈 길을 갈 것인가? 결국 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의사로 살아가게 해 준 하늘과 사회에 대한 보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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