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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Dec 26. 2023

수영 최대 진입 장벽, 단연코 수강신청

대한민국 사람들 지금 모두 수영 중

파워 J에겐 뭐든 시작하기 전 든든한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 수영을 하려면 모름지기 수영복, 수모, 수경 3종 세트는 필수다. 남자들은 많이들 무난한 검정 5부 수영복을 산다. 여자도 처음 시작하는 초보라면 강습용 검정 수영복이 보통이다. 그래서 수영 고인물이 될수록 점점 수영복이 과감해지고 패턴이 화려해진다고들 얘기한다. 그러나 청개구리 같은 나는 알록달록 이쁜 수영복이 사고 싶었다. 그렇게 제 발로 골치 아픈 수영복 고르기 세계를 향해 걸어갔다.


수영복 전문 몰에 들어가 보니 처음 보는 브랜드까지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훗날 프리다이빙을 배워 수중 사진 촬영하는 것까지 생각하며(김칫국 원샷하는 편) 내게 어울리는 색깔을 고민하다 보니 머리가 터져나갔다. 색깔을 정하니 또 패턴이 눈에 들어오고. 수모 디자인은 또 다들 어찌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수경은 블랙이 근본인가 싶다가도 화이트의 세련됨이 맘에 들었다. 우당탕탕 3종 세트를 최종 결제하고 나니 내 상태는 이미 너덜너덜 해져있었다. 하지만 아직 지치긴 이르다. 수영 가방, 샤워 파우치 등 디테일 옵션 선택이 남았기 때문이다. 어라, 습식 타월도 유용하다고? 이 놈 팔랑귀 때문에 준비만 했는데도 녹초가 따로 없다.


이미 넉다운되어 있는 내 앞에 드디어 최종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수강 신청이다. 이게 왜 최종 보스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만약 몸매가 별로라서, 쌩얼이 창피해서, 그냥 민망해서, 수영을 고민 중이라면 정말 아. 무. 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들은 절대 수영의 진입 장벽이 될 수 없다. 이런 고민을 이겨내고 수영을 배워보기로 마음먹었더라도 수강 신청이 아주 극악무도한 난이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주민 센터 단체 강습

가장 보편적으로 수영을 배우는 방법은 근처 주민센터에서 여는 단체 강습에 신청하는 것이다. 센터에 따라 다르지만 정원은 25~30명이며 주 2,3회 강습을 진행한다. 초급반(신규~배영), 중급반(평영~한팔접영), 상급반(양팔 접영 이상), 영법교정 등으로 수준에 따라 반이 나뉘며 시간대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다양하다. 사람이 많아 진도가 빨리 나가기 어렵고 운동량이 많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주민센터 강습은 막강한 치트키를 보유하고 있는데 바로 매우 저렴한 강습료이다. 보통 한 달에 5만 원이 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5만 원으로 주 3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강신청이 웬만한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 저리 가라다.


방법은 온라인, 오프라인 2가지가 있다. 그간 3번 정도 온라인 신청을 시도한 전적이 있고 그 기록은 처참허게도 3전 3패이다.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전부 마감된다. 앞서 정원이 30명이라고는 했지만 재등록한 인원을 제외하면 신규 인원을 위한 TO는 한 자릿수이다. 대학 시절 기억을 되살려 사이트 초시계까지 세팅해 두고 도전했지만 신청버튼을 누르는 순간 하얀 화면만 뜨거나 마우스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뭔가 진행되는 것 같긴 한데 끝내 '수강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는 볼 수 없었다. 수영의 인기가 고점을 찍는 여름에 시도한 터라 난이도가 극악무도했다.


오프라인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으나 그 소문이 아주 자자하다. 오프라인으로만 신청을 받는 몇몇 센터들이 있다. 인터넷 환경에 익숙지 않은 세대까지 생각한 공평한 방법이다. 이 방법엔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아먹듯이 누가 누가 일찍 가느냐가 관건이다. 후기를 찾아보면 수강신청 시작은 아침 6시이지만 안정적으로 선착순에 들기 위해 새벽 3시부터 줄을 선다. 이미 4시만 되어도 센터 주변은 인산인해라고 한다. 이름하야 수영 오픈런이다. 의지의 한국인들, 리스펙 합니다. 그래도 재등록은 쉬워 딱 한 번만 고생하면 되기 때문에 수영을 위한 열정이 있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개인 강습

내 열정이 부족했던 탓일까. 센터 수강신청의 바늘구멍을 도저히 뚫을 수 없었던 나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다른 방안을 찾아 나섰다. 바로 개인 강습이다. 이는 크몽이나 숨고와 같은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직접 수영 강사를 찾고 스케줄을 맞춰 개인 수강을 받는 것이다. 정원은 최대 4명 정도이고 강습료는 회당으로 책정된다. 선생님과 진도 수준에 따라 1회 강습료는 천차만별이지만 센터 강습에 비하면 매우 비싼 편이다. 하지만 성수기에는 이 또한 귀해서 주말 아침 같은 황금시간대에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이미 수영복까지 산 마당에 물러설 순 없지. 미친 듯이 검색한 끝에 집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이긴 하지만 2:1에 주 1회 인당 11만 원으로 강습을 진행할 수 있었다. 얏호! 드디어 나도 수영을 배울 수 있구나. 첫 수업 전 날 어찌나 설레던지, 벌써 저 드넓은 지중해를 맨 몸으로 가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대망의 첫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름 야매 바다 수영 경력이 있어 물에 뜨기나 뜬 채로 균형 잡기 등 기본기는 거뜬히 해내었다. 그렇게 발차기하는 법과 자유형 호흡법까지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물 속인데 이렇게 더울 수 있다니. 숨은 턱 끝까지 찼고 땀이 줄줄 흘렀다. 50분의 수업이 끝나고 나왔을 땐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후들후들 거렸다. 하지만 이내 떨리는 다리를 겨우 이끌고 버스를 타러 가는 동안 느낀 산들바람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나 곧 이 상쾌함에 중독되겠구나.


그날 저녁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영화와 맥주를 즐기며 늘어지게 쉬던 찰나 선생님께 문자를 받은 것이다. 알고 보니 강습료 주 1회 11만 원은 '1회' 강습료였다. 그러니까 한 달에 4번을 받게 되면 44만 원인 것이다. 44만 원이요? 저기 다른 곳에서는 한 달에 12번을 가도 5만 원이 안 되는데요? 암만 수영의 매력에 이미 홀라당 넘어갔다지만 이 비용은 너무 과하다. 결국 개인 강습은 강렬한 수업료와 함께 1회로 마무리되었다.



사설 센터 단체 강습

낙심한 마음을 달랠 길이 어디 또 없을까. 나도 의지의 한국인이기에 조금 경쟁률이 덜 할 것 같은 사설 센터를 노려보기로 했다. 보통 이런 센터들은 이름에 '스포렉스'나 '스포츠클럽' 등 스포라는 단어를 갖고 있다. 당연히 국가 지원을 받는 주민센터보다는 비싸지만 비교적 정원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집 주변 센터를 샅샅이 뒤졌으나 이미 신청 기간이 지났거나 오프라인 신청만 받고 있었다. 출근 때문에 오프라인은 갈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던 중 발견한 OO스포렉스! 바로 이곳이 지금까지 쭉 다니고 있는 곳이다. 다른 사설과 비교해도 약간 비쌌지만 언제든 상시 접수가 가능했다. 할렐루야. 처음엔 상시 접수 시스템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등록하고 보니 같은 신규반 안에 킥판 잡고 발차기만 하는 생 초짜부터 배영 배우는 사람까지 함께 들어가 있었다. 수업 시간엔 잘하는 순으로 줄을 서서 각자 단계의 수영을 시작하고 선생님이 그에 맞춰 교습해 주는 시스템이다. 배영까지 마스터하게 되면 중급반으로 올라간다. 대부분은 사설 센터도 한 달에 한번 정해진 수강신청일이 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예외적이다. 게다가 이 센터는 마지막 수강 시간이 밤 9시-10시이다. 예전에 필라테스를 할 때 예기치 못한 야근으로 수업에 빠지게 되는 날이면 돈 날리는 기분에 많이 속상했었는데 밤 9시면 그런 걱정도 한 시름 덜 수 있는 것이다.


고민할 것도 없지. 다음 날 바로 수강 등록을 완료했다. 주 3회 15만 원, 3개월 등록 시 10% 할인까지. 그렇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될 꿈의 발판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 정말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는 콧대 높은 운동 수영. 서울만 이런 것도 아니고 통영에 사는 엄마도 최근 수영 등록을 했는데 신규반은 도무지 자리가 나지 않아 겨우 취소 자리가 생긴 배영반에 등록했다 한다.

다들 평영이 어렵다, 접영이 최악이다 할 때 그 걱정만 했지 수강 등록이 이렇게 애를 먹일 줄은 몰랐다. 값지게 얻은 기회이니 만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 꼬박꼬박 수영장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체력만 된다면 매일 가고 싶을 정도로 재밌다. 내 인생에 정말 이런 운동은 처음이다. 앞으로 같이 늙어가 보자, 수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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