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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Dec 12. 2023

수영에 닿기 전 지나온 길

운동은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억지로 몸을 일으키던 나날들

"아, 안 되겠다. 진짜 운동해야겠다."


미간에 힘을 주고 한껏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이 몇 번째 다짐인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건 진짜, 이번엔 진짜라는 것이다. 이직 후 아침-점심-저녁 세끼 꼬박꼬박 잘 챙겨 먹다 보니 슬금슬금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방의 습격은 아주 조심스러워 초반에 눈치채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라가는 기온에 따라 모처럼 작년에 입었던 여름 바지를 꺼내 입은 순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라, 이 바지가 이렇게 허벅지가 타이트했던가? 조여 오는 다리를 애써 무시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여 오는 건 다리뿐만 아니었다. 허리가 메인이다. 이러다 허리가 두 동강이 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날 밤 곧장 동네방네 이 비장한 운동할 결심을 알렸다. 지구상에서 인사말 빼고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나 오늘부터 살 뺄 거야' 아닐까. 늘 불특정 다수가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오랫동안 여러 번 하던 말이다 보니 다들 별 반응도 없다.


하지만 난 꽤나 진지하다. 체중 항상성이 좋아 ±2kg를 유지한다는 것이 자랑거리 중 하나였는데 그 오랜 관습을 깨부수고 몸무게 앞자리가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아무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회사 헬스장에 등록하여 주 2회, 1시간씩 다녔단 말이다. 처음 웨이트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PT 없이 혼자 유튜브에 의존해 깨작깨작 거린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이마저도 3개월 정도 다니다 그만뒀다. 유산소가 너무 재미가 없었고 헬스 광인들의 거친 숨소리 틈 속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느꼈다. 군중 속의 고독은 무슨, 운동이나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을. 맞다, 핑계다. 여하튼 헬스장에 쿨하게 이별을 고했다.


필라테스는 약 5년 정도 꾸준히 한 운동이다. 집 근처 필라테스 학원에 줄곧 다녀왔는데 이직 후 직장이 멀어지며 못 가는 중이었다. 5년이면 강산이 반쯤은 바뀌었을 텐데 또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필라테스는 군살과 라인 정리는 잘 되지만 살이 잘 빠지는 운동은 아니다. 과감하게 패스.


최근 핫했던 테니스는 어떠신가. 핫한 건 뭐든 꼭 해봐야 하는 성격에 이미 작년에 테니스 학원도 다녔었다. 1대 1 수업을 받기엔 강습료가 부담되어 대학 동기 유미를 꼬셔 2대 1 수업을 들었다. 주 1회 이수역까지 방문해 레슨을 받으며 먼 훗날 한강 야외 테니스장에서 멋지게 랠리 하리라 원대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흥미를 찾을 수 없었다. 나름 몸 쓰는 걸 잘해서 웬만한 신체 활동은 빠르게 습득하는 편인데 테니스는 유독 그 타격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백핸드는 쉬웠고 오히려 처음 배운 포핸드가 매번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자연스레 스텝을 밟고 왼손으로 공과의 거리를 가늠한 후 깔끔하게 스윙, 왜 이게 안될까. 그저 박자감이 박살 난 채 엉거주춤 다가가 천장으로 공을 쏘아 올리기 일쑤였다. 제2의 샤라포바여 안녕.


정말 재밌게도 유미는 그 이후로 혼자 테니스 강습을 이어갔고 그렇게 예비 신랑을 테니스 코치와 수강생의 관계로 만났다. 어느덧 내년 2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이 커플을 만날 때마다 내가 사실상 사랑의 큐피드 아니냐며 으스댄다. 역시 인생은 재밌단 말이지.


이렇게 이 운동 저 운동 날리다 보니 맘에 쏙 드는 녀석 하나가 결국 남았다. 바로 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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