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푸어푸, 왜 하필 수영이냐면요
야매 생존 수영만 알던 바닷가 소녀의 로망
나는야 통영의 딸이다. 대학 입학 전 19년을 오롯이 바닷가에 산 덕분에 기본적으로 물을 매우 좋아한다. 우리 집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등교하기 위해선 꼭 충무교라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 다리 왼쪽으로는 통영대교가 있고 오른쪽엔 먼바다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있다. 6년간 매일 아침저녁으로 바다를 보았지만 단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다.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체육복 차림으로 해수욕장으로 곧장 직행하기도 했다. 젖은 옷으로 집에 어떻게 돌아갈지는 나중 일이다. 수업 중이라도 운명처럼 눈이 마주치고 누가 먼저 '수륙터* 고?' 하면 못 먹어도 무조건 '고'였다. *통영 해수욕장 명칭
입버릇처럼 사람은 물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강처럼 잔잔히 흘러가는 물, 정동진 바다처럼 세차게 부서지는 파도를 품은 물, 그리고 어릴 때 보았던 통영 바다처럼 아기자기한 풍경을 품은 따뜻한 물. 물은 내게 기댈 곳이자 위안이다.
구명조끼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 오랜 숙원사업이다. 가족 여행으로 간 필리핀에서 호핑투어를 한 적이 있다. 방카를 타고 에메랄드빛 바다를 가르며 섬들을 둘러보았고 중간중간 열대어가 많은 포인트에 멈춰 바닷속을 탐방하였다. 아니다, 그것은 탐방이 아닌 Just 관찰이었다. 왜냐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이상 바닷속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풍덩이 아닌 둥둥이 었다.
빵 부스러기를 솔솔 뿌리면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수면 위까지 친히 따라와 주었으나 그들과 함께 헤엄칠 수는 없었다. 귀여운 니모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끝끝내 구명조끼를 벗지 못했다. 하지만 현지인 가이드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 거북이와 나란히 유영하고 다랑어 떼 한가운데를 멋지게 관통하였다. 투명한 바다를 통과한 햇살이 몸에 닿을 때마다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게 내 마음까지 닿은 그 빛은 오랜 로망이 되었다.
아주 현실적으로 하필 수영인 결정적 이유는 매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저녁 수영을 가면 수영장에서 샤워까지 한 큐에 다 해결할 수 있다. 뽀송뽀송하게 상기된 볼로 돌아와 곧장 이불속에 쏙 들어가면 취침 준비 끝이다. 회사 헬스장에 다닐 때 샤워장에서 씻을 수 있었지만 집까지는 셔틀버스를 타고 먼 길을 가야 했다. 그 사이 민낯으로 동료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 항상 모자를 지참했다. 어쩌다 까먹은 날엔 화장을 그냥 안 지운 적도 많다.
테니스, 필라테스는 샤워장이 있긴 했지만 회원 대부분이 이용하지 않아 사용하기 민망했다. 집에 돌아와 바로 씻을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집에만 오면 소파에 눕고 싶다. 누워서 휴대폰 좀 만지다 보면 30분은 금방이다. 직장인에게 저녁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1분 1초가 아깝다.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퇴근 후 목욕재계를 후딱 해결해 주는 고마운 운동이라니.
좋았어, 수영을 인생의 반려운동으로 정했다. 이제 수영 강습 등록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잠깐 뭔가 허전하다. 내게 수영복이라곤 여행지 호텔 수영장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며 입은 비키니 밖에 없는 것이다. 빠르게 '여자 실내 수영복'을 검색해 보니 강습용으로 수영복+수모+수경+브라패드까지 갖춘 세트 상품이 아주 저렴하게 판매 중이다. 효율적으로 한 번에 구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건 무슨 코난에 나오는 범인도 아니고 이렇게 입었다간 죄다 검정, 검정, 검정이다. 영 맘에 들지 않아 본격적으로 수영복을 찾아보니 홍수처럼 와다다 선택지가 쏟아졌다. 수영이 효율적이라 참 맘에 들었지만 수영복 쇼핑은 어쩔 수 없이 비효율의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