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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Oct 01. 2024

우리 인생이 정말 재미없을까?

프롤로그. 집-회사-집-회사라고들 말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아닐걸?

사원증을 찍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의 진짜 세상이 시작된다. 집-회사만 있는 줄 알았던 내 인생도 가만히 살펴보니 알록달록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것저것 하기 좋아하는 경험주의자 이노랑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취미 소개 프로젝트. 야구, 러닝, 요가, 독서모임, 댄스, 우쿨렐레, 수영, 오일파스텔, 유기견 봉사 등등.. 방과 후 직장인의 취미 보따리를 풀어본다.




오늘도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본다. 그곳엔 퇴사 후 디지털노마드가 되어 여행 인플루언서의 삶을 사는 누군가가 있다. 어느새 호기심은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 계정 깊숙한 곳까지 나를 이끌었다. 끝없는 스크롤. 그 곳엔 파리 에펠탑도 있고 치앙마이 요가원도 보인다. 아주 아래쪽 옛날 사진까지 훑어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조적인 한숨과 함께 디지털노마드의 세상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업계에서 유명한 브랜드 마케터가 이번 작업물을 어떻게 콜라보하게 되었는지, 이렇게 멋진 이들과 함께 협업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를 표현한 글이 나왔다.


저 사람들의 알록달록 다채로운 인생. 부럽다. 툭하고 튀어나온 마음. 내 인생은 왜 이리도 칙칙한 무채색일까. 성인이 되어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뒤, 그동안의 삶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대학 시절에는 아주 다이나믹하게 하루하루를 꾸려나갔다. 힙합 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가사도 쓰고 랩도 하고 또 홍대의 작은 클럽을 대관해 직접 공연도 하며 '즐거운 내 인생'에 심취해 있었다. 특히 대학교 2학년, 첫 대외활동으로 World DJ Festival 서포터즈 지원 당시,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를 묻는 지원 문항에 '반짝반짝'이라고 망설임 없이 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타이틀만 보면 썩 나쁘진 않다. 8년 차 대기업 해외영업 직장인. 하지만 21살에 마주했던 그 문항을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면 지금도 다시 반짝반짝이라고 쓸 수 있을까. 흠, 솔직히 자신 없다. 매일 9시까지 출근하고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삶. 어쩔 때는 야근까지 하느라 집에 와서 잠시 숨을 돌리고 보면 금새 잘 시간이다. 그렇다고 회사 생활에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 속 빛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꾸만 마음 한편이 꽉 답답해온다. 아, 내 인생에는 왜 저런 컨텐츠가 없을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재미없지?


한두 달은 이 풀풀 먼지 날리는 회의감을 끌어안고 살았던 것 같다. 아니, 근데 잠깐만. 좀 어이없는 거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SNS에는 다들 좋은 것만 올리는 것도 알고 그걸로 시기나 질투를 느끼던 시절도 한참 전에 지나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왜 이런담. 내 인생 진짜 재미없다고? 아닐걸! 역시 주식이든 사람이든 바닥을 찍어야 기술적 반등이라도 오는 법. (주식 그런 거 맞죠? 제발!) 바닥을 찍고 나니 땅굴 파던 스스로에게 반발심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소위 '빨빨이'로 불린다. 다들 내게 체력도 좋다며 어떻게 그렇게 잘 돌아다니고 배우고 다니냐 묻는다. 학생 때도 강남, 홍대, 성수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쏘다녔고 그땐 지금보다 시간도 체력도 남아돌 때라 여행과 페스티벌도 주구장창 다녔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평일에 최소 주 3회 일정이 있었다. 지인들과 술자리도 있지만 야구장을 간다던지 춤을 배우러 간다던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게임 속 퀘스트를 깨듯, 손오공이 드래곤볼을 모아가듯 말이다.


매일매일이 스펙타클하진 않지만 그 하루 속에 나만 느낄 수 있는 반짝이는 순간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사실 인생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은 순간이고 절정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일상의 담담한 서사가 9할을 차지한다. 이 간단한 진리를 그새 또 까먹고 살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잔뜩 높아져버린 인생의 기준점을 살살 달래 가며 숨을 죽여본다.


끈기 있게 하나를 진득하게 하는 성격은 못되지만 이것저것 찍먹하고 체험해 보는 데는 도가 텄다. 그래서인지 잔재주가 많은 편이다. 그동안 경험해 본 취미를 한번 정리도 할 겸 기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 어제는 어땠나. 저번 달 첫 수업은 어땠던가. 

강렬한 한방이 없다며 흘려보낸 지난 일상을 찬찬히 반추한다. 당시에는 별 거 아니라고 넘겼던 순간이 지금 돌아보니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떠오른 생각에 집중한다. 어느 하나 같았던 것이 없다. 진흙 속의 진주를 캐내듯 살살 일상의 반짝임을 하나씩 닦아본다. 우쿨렐레도 치고 요가도 배우고 그림도 그렸구나. 그래, 꽤나 재밌게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인스타스토리, 사진첩, 일기 속에 분절되어 조각나있던 기록들을 정성스레 맞춰본다. 이 글에는 먼 나라 여행기라던지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다던지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 중 남을 위해 일하는 9-6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 내 하루를 어떻게 알록달록 색칠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퇴근 후'가 아닌 '방과 후'에 어떻게 놀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별거 없어 보인 오늘도 캐고 캐고 캐다 보니 뭐라도 나온다.

이것도 이야깃거리가 된다고? 싶었는데 돌아보니 이야기다 이거. 


이 글이 내게는 그동안의 기록이자 누군가에게는 앞으로의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만약 나의 같은 취미활동을 해본 사람이 있다면 '어,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는데?' 자극받아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어줄 수도 있을 것이고, 이곳에서 소개하는 새로운 취미활동에 마음이 동한다면 '이런 것도 있어?' 도전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월요일은 늘 쏜살같이 돌아온다. 특히 금요일 저녁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 또 월요일이다. 일주일은 은근히 짧다. 하지만 하루는 길다. 제 앞가림하며 밥벌이하느라 힘든 누군가에게 유쾌한 딴짓을 꿈꾸게 하는 불량식품 같은 순간이 되기를 바라며. 방과 후 직장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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