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갈 것, 시절인연, 남은 100년을 살아갈 마음

두 번째 귤껍질 편지

by 귤껍질


나중에, 풀어보겠지만 20대 중반에 저에게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어요. 그 일들을 계기로 꽤나 분명한 우선순위를 가지게 됐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일 순위에 두고, 긴 호흡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야 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거든요.


나쁜 일이 때론 좋은 변화의 씨앗이 된다고 믿어요. 또 좋기만 보인 일이 어떤 면에서는 나를 취약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나쁜 일은 삶을 더 좋게 할 계기로, 좋은 일은 그 자체로 감사하기로 했어요.





첫 번째 편지에 대해서, 동물의 숲 같다, 따뜻하다, 재밌다 정도의 피드백을 들었어요. 지인의 재밌는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관점에서 좋은 이야기들을 해준 것 같아요.




저의 한 주는 이렇게 흘러갔어요. 매주 일상을 공유하는 게 스스로 부담스러워지면 그때는 잠시 생략하려 해요.


9/15(월) : ‘시나브로‘ 카페에서 커핑 클래스 듣기

9/16(화) : 점심 운동, 필라테스

9/17(수) : 가죽 반지갑 만들기 클래스, 짧은 저녁 약속

9/1(목) : 점심 운동, 필라테스, 영어학원 상담

9/22(금) : 저녁 산책, 미지의 서울 보기

9/23(토) : 결혼식, 마르크 샤갈 전시, ‘고트델리’ 식사

9/24(일) : 경주 당일치기 (김현식 작가님 작업실, 보아프 전시, 에가미 에츠 전시, 청수당, 어향원, 고도벌)




ch1. 시안은 왜 시안일까요?


초심,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기억하시나요? 잔뜩 긴장해서 한 걸음을 내딛고, 금세 꿈에 부풀었다가, 쉽게 좌절해 버렸던 시절. 힘들었지만,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감사했던 마음을 떠올려 봤어요.


시안이라는 이름엔 처음의 마음과 광덕산 호두마을의 푸른 풍경을 담았어요. 또 산이라는 점을 비틀어,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란색을 사용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예술적인 쉼이 있는 곳 시안입니다.’라고 소개하는데요. 예술가들을 위한 쉼터가 되었으면 해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도, 예술과 함께하는 쉼이 있는 곳을 꿈꿔요.


또 뭐든 잘하면 예술의 경지에 오르는 법이죠. 그래서 예술적인 쉼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ch2. 우양미술관 보아프 전시에서, 사랑에 대해


경주에서 보아프 전시를 봤어요.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가나 출신 작가예요. 강렬한 색감, 화려한 패턴의 그림에서 에너지가 뿜어 나왔어요. 생동하며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전시 후에 반가운 사람과 만남을 가졌을 때처럼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특히 같이 간 분들이 턱시도남이라고 한(ㅋㅋ), 여유롭게 웃고 있는 남자 그림에 엄청 눈길이 갔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로움 같아서, 계속 보고 싶었어요.


사랑에 빠진 느낌, 마음이 콩닥거렸다.


마지막 작가님 영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에너지는 사랑이라고 하더군요. 사랑은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고 더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타인에게 확장된다는 말. 먼저 내 안에 좋은 게 있어야 꺼내서 보여줄 수 있다는 말도 여운이 깊었어요.




ch3. 여백에 대한 이야기


김현식 작가님의 작품을 보며, 처음으로 추상의 매력을 알았어요. 선과 빛으로 깊이를 표현하고, 그 깊이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나의 내면을 마주하게 해요.


실제로 만나 뵌 작가님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분이셨어요. 흩어진 물감과 붓, 메모가 잔뜩 적힌 칠판까지 물건이 잔뜩 있는데도 왠지 정갈해 보이는 작업실이었어요. 그 안에서 미술사와 작가님이 걸어온 여정, 그리고 여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여백은 남겨진 것이 아니라, 그려진 것이라는 말. 빈 시간과 무용한 경험은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의도된 것이라는 말로 들렸어요.


삶의 방향을 덜어내기와 더하기로 나누면, 저는 아무래도 더하는 쪽일 것 같아요. 하지만 점차 삶의 중심이 잡히면 그때부터는 중요하지 않은 걸 덜어내고 싶어요.


여러 중의적 의미가 있지만, 여백과 옥을 합친 여옥에서 작가님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계신지 들을 수 있었어요.





ch4. 커피라는 우주


사내 동아리를 세 개나 하는데요. 문화 예술, 만들기, 커피 동호회예요. 그중 커피 동호회에서 카페 ‘시나브로’에서 커핑 클래스를 들었어요.


커핑은 커피의 맛과 향을 느끼는 방법이에요. 아로마키트로 향을 맡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아로마키트는 실제 와인과 커피 자격증을 위해 연습할 때 사용하는 도구라고 해요. 원두에 물을 붓고 일정 간격으로 시음하며, 가장 맛있게 우려진 시간을 찾았어요.


누군가에게는 똑같은 커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우주만큼 방대한 이야기와 요소들이 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ch5. 실 하나를 골라도


가죽공예는 바느질이 거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실과 가죽 딱 두 가지의 색을 고르는 것에도 개인의 가지각색의 취향이 반영되었어요.


아쉽게도, 무두장이처럼 가죽을 말랑하게 다듬거나 재단하는 일은 모두 생략됐죠. 낭만이 대거 덜어내 졌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재미있었어요.


손끝에서 제품이 탄생하는 경험. 반복적인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주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기분이 있었어요.





에세이를 쓰다 보니, 마음이 말랑말랑하게 변하고 괜히 시적인 문장을 남기고 싶어 지네요.


여러분은 삶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나요? 그중 의미 있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하지만, 그 이면의 삶을 대하는 마음도 정말 다채로운 것 같아요.


다정한 하루 보내세요!



+ 추신!

업무를 하다가 디자이너분들과 와다다 달려 나가서, 칸쵸를 털어왔어요. 이건 타사 마케팅 사례조사야! 하면서 열심히 찾았죠. 작은 도파민이 필요하다면 시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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