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건 코코회사에서 출발했다.

다섯 번째 귤껍질 편지

by 귤껍질


엄마와 차담을 하면서 시안, 할아버지의 졸업장, 목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글의 소재가 풍부해지는 시간이었어요. 잔뜩 메모해 놨어요. 천천히 하나씩 풀어내 볼게요.


말랑하고 다정한 것들을 좋아하지만, 숫자로 가득한 금융권에서 벌써 5년 정도 일을 하고 있어요. 현실의 문제들을 정확히 마주하고 싶어요. 동시에 호기심과 감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싶어요. 두 마음을 모두 존중하고 싶어요.


변화를 위한 에너지가 가득 찬 느낌이에요. 연휴의 끝자락에 이제는 결단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쑥 더 들었어요. 시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다가, 덮어놓은 질문들에 답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어요.


답답하고 촘촘한 공기, 건물, 사람들이 광덕산과 사뭇 다른 느낌을 주면서, 왜 부모님이 서울에 왔다가도 황급히 광덕산으로 돌아가는지 이해했어요. 하지만 저의 삶의 중심은 아직 서울에, 도시에 있으니 여기에서 고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자잘한 이벤트들보다, 굵직한 질문들로 채워진 것 같은, 이번 한 주는 이렇게 흘러갔어요.


10/6(월) 서울거리예술축제

10/7(화) 도자기 만들기, '아트 컬렉팅' 읽기

10/8(수) 료의 '생각 없는 생각' 읽기

10/9(목) ‘시안’ 간판 붙이기

10/10(금) 다시 서울로

10/11(토) 집콕, ‘핀테크 2024’ 읽기

10/12(일) LBCC 강의, 뚜까따 슈퍼




ch1. 시안 공방을 가득 채운 도자기들


시안에서 도자기 클래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몸을 쓰면 정신이 맑아지고, 꼬인 생각이 저절로 풀어지는 느낌이에요. 특히 취향에 맞는 만들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돼요. 몰입 이후에는 새로운 기분으로 풀리지 않던 문제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요.


이런 기분을 가장 많이 느끼게 해 준 건 도자기예요. 물레를 치면서, 온몸으로 흙을 밀어 올리면 (축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정말 온몸으로 지지해야 하더라고요.) 손끝으로 그날의 스트레스가 빠져가는 기분이에요.


통창으로 자연이 들이치는, 시안의 공방에서 도자기 클래스를 수강하실 수 있어요. 우선 오픈 특가로 저렴하게 하고 있었는데, 가격을 인당 4만 5천 원으로 조금 올리려 해요.


수업을 제공하고, 유약 처리를 하고 가마에 두 번 도자기를 굽고, 배송하는 노동까지 꽤나 손이 많이 가거든요. 엄마가 자신의 작품을 만들 시간도 없이 내내 분주한 모습도 마음에 걸렸어요.





ch2. 도자기를 선물하는 마음


손으로 만든 물건에는 왠지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결혼하신 대리님께 동생의 도자기를 선물했어요. 뽁뽁이, 반투명 포장지, 볏짚색 노끈으로 어딘가 약간 허술하지만 그래도 정성이 느껴지게 포장했어요.





ch3. 코코회사 이야기


가족끼리 일 하는데 힘든 점은 없어?라고 물으면, 물론 있지요. 감정적으로 되기 쉽다는 거예요. 시안을 일구면서 공간이 가져오는 새로운 경험들과 가능성에 설레요. 앞선 글에서는 주로 이 설렘에 관해 이야기했는데요. 가까이 들여다보면 중간중간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들이 끼어 있어요.


시안의 미래는 자녀가 주도적으로 그렸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부모님의 두 번째 삶을 응원하는 마음이 있어요. 이 마음들에 기대어, 오늘도 서로를 존중하며 잘 해결해나가고 있어요.


이번 연휴에 문득 코코회사가 떠올랐어요. 가족 안에서 창업한 저의 첫 회사랄까요. 나름 씨엠쏭도 가지고 있었어요. 유일한 직원인 동생과 사장인 저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심부름을 하고, 이주의 뉴스 방송을 하고, 가끔 깜짝 공연도 하는 귀여운 회사였어요. 역시 가족 회사답게 감정적 이슈들이 있었는데요. 엄마는 유일한 직원인 동생을 하루에도 두 번씩 잘랐다가 새로 고용했다고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아무튼, 부모님의 생일마다 심부름 쿠폰을 다량 발행하던, 이 깜찍한 회사에서는 다양한 취미 활동도 했어요. 소파가 배달 오고 나면 그 박스를 개조해서 집안의 작은 집을 만들었어요. 명절에 선물을 받으면 그 선물을 싸고 있는 보자기들을 풀어서 머리에도 두르고, 허리에도 둘러서 보자기 공주 놀이를 하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활발히 운영되었던 코코회사는, 중학생이 되고 사회적 자아가 급격히 발달하던 시기에 소리소문 없이 문을 닫았어요. 이 코코회사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길게 풀어볼까 해요.




ch4. 거리를 무대로, 어디든 무대로 쓰는 법


추석 연휴 기간에, 시청 광장과 청계천을 따라 서울거리예술축제가 펼쳐졌어요. 대학교 때 자원봉사자로 처음 참여했어요. 프랑스 아티스트들의 통역 봉사를 맡았죠. 무대 세팅을 돕고, 현장을 관리했어요. 틈틈이 시간이 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공연을 보러 돌아다녔어요.


익숙한 시청 광장과 청계천이 무대로 변하는 순간들, 그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던 기억이 너무 소중해요. 좋아하는 걸 만났을 때, 강하게 반짝이는 빛을 만났을 때처럼 눈부신 느낌이 들어요. 강력한 첫 기억이고, 끌림의 순간이에요.


올해 거리예술축제에서 가장 좋았던 무대는 인형극이었어요. 파란 양복의 할아버지가 두 개의 트렁크를 들고 등장했어요. 트렁크는 무대로 사용됐고, 트렁크 안에는 손수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인형들이 들어 있었어요.


러시아어로 진행되어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인형들이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또 할아버지 아티스트분의 에너지와 자유로움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라고 마음의 문을 기분 좋게 두드리는 것 같았어요.




좋아하는 게 많고, 그걸 삶 곳곳에 배치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 꾸준히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날이 추워지네요.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가 주는 새로운 기분을 놓치지 말고 느껴보시길 바라며, 다음 편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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