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펼쳐낼 공간을 가졌다는 것

네 번째 귤껍질 편지

by 귤껍질

연휴는 시안에서 시간을 보내려 해요. 마음이 편해지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계절의 흐름이 느껴지고 외부의 자극과 멀어져서 내 호흡에 맞춰 살 수 있는 곳이에요.


이번 주는 나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고민했어요. 료님의 북토크가 준 영향이 커요. ‘그런 나라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좋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다양한 면모를 알아주며 살고 싶어 졌어요. (마치 아래 사진 속, 돌틈에 낀 빨간 토마토의 존재를 눈치채 주는 것처럼요.)



이번 주는 이렇게 흘러갔어요.


9/29(월) 노들섬 산책

9/30(화) 점심운동

10/1(수) 료님 북토크

10/2(목) 필라테스, 조조와 비비(냥냥이) 만난 날, 집들이

10/3(금) 연휴 시작, 꿀잠 자기, 천안 도착, 엄마와 차담

10/4(토) 달걀 사냥, 감 따기, 간판 그리기, 손님들에게 편지 쓰기

10/5(일) 큰아빠댁 가기



ch1. 시안의 성장


연휴의 시작부터 손님이 왔어요. 고객의 여정을 상상하며, 환대받는 느낌을 드리기 위해 부산스럽게 여러 준비를 했어요. 작은 파티를 기획하는 것 같았어요. 침구를 빨고, 바닥을 닦고, 책을 정리했어요. 다과와 웰컴티를 준비하고, 갤러리 공간에 자리를 세팅하고 음악을 틀어뒀어요.


버터색종이를 을지로 매장에서 보고 한눈에 반해서 냅다 사 왔어요. 그리고 손으로 잘라 단면이 보슬보슬한 작은 편지지들을 만들었어요. 체크아웃을 할 때 선물과 손글씨로 쓴 편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리뷰를 부탁했어요.


시안에서는 도자기, 페브릭 제품들을 만들고 있는데요. 시안에서의 시간이 다정한 기억으로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선물했어요. 오픈 초기의 특별 선물이에요.


정성스러운 에어비엔비 후기가 달렸을 때 엄청나게 뿌듯했어요. 그리고 그다음 손님에게도 꼭 진심이 담긴 후기를 받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올랐어요.


누군가를 초대할 공간이 있다는 건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었어요. 새로운 사람들과 시안을 통해 만나는 경험들이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에어비엔비 시안 링크 : https://www.airbnb.com/l/nJxpLSLe




ch2. 시안에서 받은 미션들


달걀 가져오기, 간판 그리기, 감 따기 등 광덕산에서는 콘텐츠가 넘쳐요.


옆집 뚝딱이 아저씨네가 해외여행을 간 동안 배추의 달팽이를 제거하는 미션을 받았어요. 달걀이 부화돼서 병아리가 더 생기기 않도록 계란도 꺼내 먹으라고 하셨어요. 엄청나게 무섭고 큰 닭들을 제치고, 무사히 달걀을 꺼내왔어요.


가까이에서 본 닭들을 근래 본 조류 중 제일 무서웠어요. 온갖 호들갑을 다 떨었는데, 막상 알 낳는 구역이 따로 있어서 달걀은 닭들과 교류 없이 쉽게 가져올 수 있었어요.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받쳐서 흔들림 없는 편안함으로 간판을 그렸어요. 시안의 입구에 놓을 거예요. 완성하고 나니 명품샵 간판 갔다며 엄마의 폭풍 칭찬을 들었어요. 이로서 시안 갤러리와 공방을 짓고 남은, 마지막 벽돌까지 다 사용했어요.



해가 지기 전에 호다닥 뛰어나가서 감도 잔뜩 따왔죠. 그러다가 마침 시안북스테이에 머물고 있는 손님들도 만나서, 가장 잘 익은 감 두 개를 드렸어요.

하루가 바쁘게 흘러가는 시안에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방방 뛰어다녔어요. 도롱뇽과 개구리도 만나고 토마토와 가지도 따먹으며 농촌소녀가 되었어요.



ch3.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현실적으로,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고 인정해요.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새로운 삶을 상상하고, 나만의 선택을 내리는 걸 망설이게 하는 것 같거든요.


누군가는 몽상가 같다고 한, 료님의 말이 저에게는 깊게 와닿았어요. 나를 레퍼런스로 삼고, 내 안에 쌓인 시간의 레이어를 살펴봐야 한다는 말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해 봐요.


물론 내 안에 뭐가 있는지는 다른 사람과 환경을 만나며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요. 내 안에 갇히는 것과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를 궁금해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일상의 모든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은 너무 따스했어요. 귤껍질 편지를 통한 회고가 층층이 쌓인, 쌓아가고 있는 제 경험들을 깊이 볼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어요.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요.




ch4. 빙글빙글 노들섬을 돌면서


옛날에 힘들었던 기억들이 문득 떠오르고, 그때의 분노가 하나도 덜어지지 않은 상태로 고여 있는 걸 발견했어요.


오늘의 좋은 기분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모든 감정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건 확실히 느꼈어요.


저녁에 노들섬 야경을 보며 걷다 보니, 맑은 강바람이 복잡한 기분과 생각을 정화해 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안의 여러 감정과 경험을 잘 소화하고 담아내며 살아가고 싶어요.




ch5. 예쁘지 않은 건 출입금지!


임시보호하다가 가족으로 키우기로 결정한, 지인의 고양이를 보러 집들이를 갔어요.


작은 거실, 거실보다 큰 안방, 이 두 공간과 길게 붙어 있는 베란다 겸 두 번째 방이 있는 구조의 집이었어요. 방문을 하나는 떼어 버리고 하나는 열어 둬서, 미로 같은 모양의 하나의 방에 들어온 것 같기도 했어요.


노란 조명, 편지들과 인형, 소품과 책들, 스타일리시한 옷과 신발들까지 일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집이었어요.


주인의 취향이 아닌, 예쁘지 않은 건 출입금지!라는 조건이 꽤나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제 취향의 아기자기한 공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ch6. 작은 이벤트 만들기


일상에서 작은 이벤트를 만드는 걸 좋아해요. 어제와 다른 오늘이 재밌어요. 회사 과장님께서 출판을 하셨다고 해서, 싸인을 받았어요. 행복하세요, 같은 거 안 써주시냐고 요청했더니 평생 재밌게 살라고 해주셨어요.



보통의 날들이 월화수목금토일로 한 주 단위로 흐르면, 연휴는 신기하게 하루 단위로 인식돼요. 그냥 아침, 점심, 저녁으로 된 낱낱의 하루들이 쭉 늘어져 있는 것 같달까요. (다소 복잡하게 말했지만, 요약하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아직 연휴가 남아 행복한 기분이에요. 모두 해피 추석보내세요!


https://citruspeel.stibee.com/




+워크샵을 준비해 주신 디자이너분들께 감사의 선물을 드리려 올리브영에 다녀왔어요! 오전 탈출을 기념해 그려주신 그림이에요.


+아침에 마신 카푸치노와 하트!


+시안에서 만든 걱정인형들


+새로운 팀원분을 환영하며, 노보텔 점심 뷔페에 갔어요!


+산삼주와 명절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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