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서울집에 도착해 이모 얼굴을 보니 또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이모가 와 주시지 않았다면 경찰관분들께
동생을 파출소에 데려가서 곁을 지켜 달라고 요청드렸어야 했을 것이다.
잠에서 깬 동생은 미안하다면서 울었다.
그런 동생을 끌어안고 나도 울고, 아빠도 울었다.
동생은 충격적인 얘기를 들려줬다.
첫째는, 병가를 냈다고 했을 즈음에 사실은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본사로 복귀해서 일을 하게 될 도시의
소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했었는데 그게 알고 보니 사기였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일부 대출을 받아 마련한 계약금을 잃었다고 했다.
갑자기 쏟아진 예상 못한 이야기에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동생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치 않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렇다면 거의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동생은 나와 가족들을 속여왔던 것이다.
매일 출근 준비를 했던 동생은 사실은 할 필요도 없는 준비를 하는 척 했던 것이다.
말을 재밌게 한다던 동생의 팀원들도,
내게 알려줬던 분양받은 집주소도 거짓이었고,
자녀가 몸이 안 좋아 못 나오는 다른 팀원 대신 일을 도와달라는 팀장님의 요청으로
이사 갈 도시로 내려가는 일이 일주일가량 미뤄졌던 것도 거짓말이었다.
분양 사기를 당했다는 건 진실일까?
병가를 낼 즈음에 일을 그만두었다는 건?
그럼 처음 우울증을 얘기할 때 팀원들이 괴롭혔다는 건?
가장 친한 친구가 돈을 빌려간 뒤 연락이 끊겨 힘들었다는 건?
회사에 입사를 한 적이 있기는 한 걸까?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막 잠에서 깬 동생을 붙잡고 어디까지가 진실이냐고 차마 따져 묻지 못 했다.
언젠가 동생은 병가가 끝나고 복귀한 뒤에 새로운 팀장님이 저녁을 사줬다고 한 적이 있었다.
메뉴는 소고기였고,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동생이지만 그 날은 하이볼을 같이 마셨다고 했다.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언니인 내게 왜 이렇게까지 불필요하고 구체적으로 거짓말을 한 걸까?
동생은 최근에 적금을 탔고
'동생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받은 대출금을 갚으라고' 내가 동생에게 빌려준 돈을
갚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며칠 뒤, 동생은 은행 어플의 이중보안 핀번호를 5번 이상 틀려서
은행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며 송금이 늦어질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었다.
나는 정말 동생을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었나 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모든 게 이상했다.
업무가 장기화되어 본사로 복귀하는 일정이 미뤄졌다는 것도,
회사에 대한 얘기를 잘 하지 않았던 것도,
동생의 출근 시간이 '나보다 1시간 늦은' 10시였던 것도,
가족들이 제안을 해도 분양 받은 집에 한 번도 데려가지 않은 것도,
최근에 나의 사소한 말에 과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도.
그때는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던 것들이
이제는 의심스럽고 이상한 것들뿐이었다.
동생에 대한 신뢰는 깨졌고
모두를 속여 온,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몬 동생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울증에서 비롯된 거짓말일까?
혹은 내 동생이 거짓말을 하는 병에 걸린 걸까?
그렇다면 그 병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동생을 의심해야 되는 현실이 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