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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킴 Oct 14. 2023

영화 '디어존' 그리고 아메리칸 위스키

우리의 첫만남

오늘의 곁들임






Movie
디어존



liquor
아메리칸 위스키





나는 주말을 맞아 소파에 누워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보는 시간을 사랑한다. 평일엔 바빠 즐기지 못한 여유를 주말엔 꼭 누려보고자 한다. 오늘 볼 영화는 디어존이다. 이 영화는 주연배우의 팬이어서 보게 되었다. 러블리함의 대명사 아만다 사이프리드, 남성성의 대명사 채닝 테이텀이 한 영화에 출연하다니! 팬심으로 영화를 보게 되어 스토리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와 그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디어존'은 군인 존과 대학생 사바나의 닿을 듯 닿지 못한 사랑을 담은 로맨스영화이다. 존은 군복무 중 2주간의 휴가를 맞아 고향을 찾게 되고, 해변에서 사바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게 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한다. 편지를 통해 마음을 나누자는 것이다. 존과 사바나는 1년 동안 만나지 못하는 동안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Dear john" 

"Dear Savana"

로 시작하는 편지들은 국경을 넘어 존이 있는 전쟁지역까지 도착한다.


국경을 넘어 사랑을 이어온 그들은 늘 편지 마지막에 '곧 다시 만나자'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공항에서의 눈물겨운 재회까지! 디어존의 모든 장면들이 우리의 모습 같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도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군생활이 떠올라 군인 영화 보고 싶지 않다'던 남자친구도 영화에 빠져들었다.




나와 남자친구의 첫만남이 기억난다. 


그 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금요일이었다. 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의 취미를 즐기며 돈을 벌기 위해 금요일마다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바이브가 살아있는 팝송을 들으며 분위기에 취하다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려 용돈 벌이하기엔 딱이었다. 


'오늘은 좀 피곤하네, 빨리 마치고 퇴근하고 싶다.' 그녀는 퇴근 후 집에서 마실 맥주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날의 첫 번째 손님은 혼자 당구대에 걸터 앉아 코로나 맥주를 2병을 홀짝 마셨다. 그녀는 맥주와 함께 내어 왔어야 할 레몬을 빠뜨리는 실수를 해 재빨리 레몬을 가져다 드리려 했지만 첫 번째 손님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게 안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힙한 음악만 가득 차 있었다. 


-딸랑-


마침내 두 번째 손님이 가게 문을 열었다. 검정색 자켓에 검정색 바지를 입은 그가 등장했다. 순간 가게 안의 음악이 멈춘 듯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그녀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열 발걸음 쯤 걸어와서 멋쩍게 웃었다. 

'어..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그는 그녀가 안내한대로 가게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주문을 받았다. 


'잭콕 한 잔 주세요.'


그는 오랫동안 그녀가 그려온 이상형에 흡사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내게도 이런 일이! 그는 강아지같은 커다란 눈과 적당히 서울 말씨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다.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이 눈에 반하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질문을 하는 그녀의 눈빛에, 살짝씩 벌어지는 입술에, 움직일때마다 찰랑이는 치맛단에 자꾸 시선이 갔다.



그녀는 처음으로 퇴근이 늦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한잔씩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다. '이렇게 멋있는 사람에게도 여자친구가 있을까?' 그는 오래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져 지금은 혼자라고 했다. 그녀는 옛 연인이지만 한때 그를 만났다던 그 여자가 부러웠다. '여자친구가 없다고 하니 먼저 번호를 물어봐도 되겠지?' 



그는 잭콕을 마셨다. '잭콕'은 잭다니엘에 콜라를 섞은 칵테일이다. 두 음료를 섞기만 하면 되어 따로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고, 콜라의 단맛을 느끼다보면 어느새 잭다니엘의 알코올이 코끝을 스친다. 



그녀는 레몬 슬라이스를 잔에 끼운 데낄라를 마셨다. 그는 두번째 잔도 잭콕을 마셨기에 그녀에게 잭콕을 맛볼 것을 권했다. 도수 높은 위스키가 콜라의 향에 가려진 맛이 신세계였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점점 없어지고 그 곳엔 오롯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둘만 남았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잭콕을 보면 그가 생각났다. 그는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는 위스키를 마셔본 적 없었지만 그와 함께라면 마셔보고 싶었다.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우리의 세계가 열렸던 그 시작에 위스키가 있었다. 

남자친구에게 우리의 첫만남을 회상하자고 하면 '잭콕와 데낄라'를 외친다.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 소주라면 미국을 대표하는 술은 버번위스키가 아닐까싶다. 위스키중에서도 저렴한 가격 탓에 대중적으로 유명한 술이 많다. 버번이란 이름은 18세기말 미국에서 최초로 위스키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켄터키 주 버번에서 따온 것이다. 주원료인 옥수수에 호밀과 몰트를 다양한 비율로 첨가해 만든 증류주다. 나는 버번 위스키 중에 Maker’s Mark, Jack Daniel’s, Jim Beam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 단연 최코는 우리의 첫만남을 떠오르게 하는 잭다니엘!



그때가 생각난 김에 술잔에 잭다니엘과 콜라를 섞어 잭콕을 만들어본다. 잭콕을 마시며 그 때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친구는 그날 그 펍에 가지 않았더라면 너랑 만나지 않고 화려한 솔로로 살았을텐데! 하면서 농담을 한다. 나는 그런 그의 옆구리를 콕 찌른다.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말고 영화를 마저 보라는 뜻이다. 우리는 잭콕에 얼음을 가득 넣고 '디어존'의 나머지 부분을 함께 본다. 그를 만나기 전에 아메리칸 위스키를 마셔본 적도, 아메리카에 가본 적도 없는 내가 미국 남자랑 잭콕을 마시며 살고 있다니! 역시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군,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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