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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런 Jul 09. 2024

휴지를 앞으로 걸어둘까, 뒤로 걸어둘까

[1장 너와 나 -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갓 취업을 한 이후 친구와 짧은 시간 함께 지낸 적이 있었고, 그 길로 우리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참 잘 맞는다고 생각한 친구였기에 관계가 무너졌다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친구와 잠깐 지내는 것이 아닌 살을 부대끼며 살다 보니 부딪히는 점이 참 많았다. 결론적으로, 그 친구는 내가 알던 '나와 참 잘 맞고 상냥한 친구'가 아니었다. 적어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는 동안은 말이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내 방은 나를 닮아있고 나의 일상이 녹아있다. 그런 은밀한 공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것은 매우 큰 결정이다. 물과 기름처럼 정반대 성향의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면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가 된다는 말도 충분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가 된다. 


특히 결혼은 단순한 일상의 공유를 넘어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순간이다. 또한, 필연적으로 같은 공간의 공유를 동반한다. 살림을 합치며 서로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갈 적합한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막상 보금자리를 찾고 난 이후 함께 하는 생활은 또 다른 시작이 된다.


출처: 픽사베이(Pixabay)

결혼을 앞둔 내게 지인들은 하나같이 '같이 살면 또 다를걸'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들을 던지곤 했다. 그때 나는 이 문장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모든 나날이 신기하고 재밌을 것이라는 아주 철없는 상상만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무심코 바라본 휴지는 내 생각의 가벼움을 정곡으로 저격했다. 평소 나는 휴지를 걸 때면 손이 가는 대로 걸어 두었다. 휴지를 거는 방향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그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날로 점지돼 있었던 것일까. 화장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평소 관심도 없던 '뒤'로 걸린 휴지를 관찰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나는 흡사 휴지 도둑이 우리 집을 다녀온 게 아닌가 하는 순간의 착각마저 들었다. 분명 휴지를 뒤로 걸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소리 소문 없이 그 방향이 '앞'으로 바뀌어 있었다. 놀라웠다. 이 공간에는 분명 나와 남편 두 명이 살고 있고 내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그렇다. 남편의 행동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휴지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앞 방향으로 걸어두는 것이 사용하기에 편리해 아무 의도 없이 본인이 바꾸어 두었다는 것이다. 순간 아차했다. 미처 생각하지도 않은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돌이켜보면 새로 살 공간에 이사 온 순간부터 나는 공간 자체에만 과도하게 집중해 있었다. 물건을 어떻게 정리하고 배치할지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간 이전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휴지 방향을 어디로 걸어두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정답이랄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해와 배려다. 남편에 대해 좀 더 이해하며 행복한 우리 집을 만들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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