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너와 나 - 내 생각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
우리는 언제나 주어진 과업, '일'로부터의 온전한 휴식을 꿈꾼다. 하지만 일은 우리 주변을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퇴근 후 돌아온 집에서 또 다른 일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바로 집안일이다. 그 공간이 자취방이라면 집안일을 좀 미뤘다고 해서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빨래, 설거지, 화장실 청소 등 집안일은 아주 사소한 듯 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다. 결혼 생활을 막 시작한 신혼 초기 관계를 위협하는 잠재적 갈등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서로의 생활 습관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하고 예민한 영역이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집안일로 싸우는 부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보다 덜 복잡해 보였을뿐더러 이해관계도 얽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누구든지 솔선수범하고 양보하면 된다고 아주 코웃음을 쳤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이 심각해지는 건가. 결혼 후 맞이한 집안일은 사뭇 달랐다.
결혼을 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그다지 마음이 넓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배우자의 생활 습관을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는데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는 부분에서 이해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어느 날,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기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놀라 황급히 세탁실로 뛰어간 적이 있다. 남편이 꺼낸 세탁물 속에는 속옷과 잠옷, 외출복, 양말이 한 군데 엉켜 나뒹굴고 있었고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속옷이랑 양말을 같이 빨다니. 더군다나 새하얀 원피스와 새카만 바지들도 엉켜 있었다.
남편은 어차피 세탁기에서 세탁이 되는 마당에 속옷이며 양말이며 구분해 빨 이유가 없다고 했다. 세탁기 내부에서 세제로 깨끗하게 세탁이 되기 때문에 실내복과 실외복을 나눌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경험상 검은 옷과 흰 옷을 같이 빨아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나는 양말과 속옷을 함께 세탁하는 행위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밖에서 온갖 먼지를 다 묻히고 온 실외복은 실내복과 섞일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위생적인 관점에서는 말이다. 밝은 색 옷과 어두운 색 옷을 함께 세탁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안일, 특히 '세탁'의 방법을 두고 몇 번의 언쟁을 벌였다. 서로의 입장을 일부 수용해 우선 속옷과 잠옷, 수건은 실내의 영역, 양말과 외출복은 실외의 영역으로 나누어 빨래를 하기로 했다. 밝은 색과 어두운 색 옷을 나눠서 세탁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염 가능성이 큰 옷은 알아서 사전에 빼기로 했다.
집안일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가 대화로 끝낼 수 있었던 사안을 언쟁까지 끌고 간 데에는 각자 서로가 생각하는 입장이 정답이라고 내세웠던 탓이 크다. 집안일을 하는 방식에는 그동안 개인이 살아온 삶의 방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리고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생각도 답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의 생각이 정답은 아닌 것이다.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팽팽한 달리기를 하기보다는 양보할 것은 내어 주며 모나지 않은 동그라미를 그려 나가는 것이 같이 사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