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으로 일한 지는 25년이 지났다.
결혼을 하고 육아와 살림만 줄곧 하느라 강산이 한 바퀴 돌고 또 한 바퀴 돌고 반바퀴 더 도는 것도 잊고 살았다.
나는 결혼 전에도 사회불안증이 조금 있었는데 다시 세상에 나간다는 건 여전히 나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음식이 있고 자주 가는 단골집에서 일하는 거라면 가능할 것도 같아서 큰맘 먹고 지원한 곳이다.
5시부터라고 알고 있었지만 사장은 내게 문자로 5시 30분까지 와 달라고 요청했다.
30분 차이가 났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며 식당에 도착했다.
젊은 청년이 인수인계를 해준다며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뜻밖에 그 젊은 청년은 고등학교를 자퇴한 열여덟 학교밖 청소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본인 엄마와 나이가 같다는 것도.
더 놀라운 것은 사장의 나이가 스물여섯밖에 되지 않았고 주방을 책임진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손님응대와 주문받기, 토핑 뿌리기, 밥솥에서 밥퍼서 주방에 넣어주기, 서빙, 계산, 배달 포장하기, 다 먹은 그릇 치우기, 수저 닦기, 테이블 서랍 속 냅킨과 수저 채우기 등이었다.
아날로그적인 것은 예전방식이랑 별차이가 없어서 쉬워 보였지만 디지털적인 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포스 기는 써 보셨어요?"
인수인계 해주는 청소년이 포스기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아니요. 우리 때는 카드 단말기만 있었어요."
화면에는 테이블 배치도와 메뉴란 아래줄에는 자잘한 그림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배달알림이 오면 여기를 터치해서 최대한 시간을 늘려주셔야 돼요."
선임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지만 이미 노안이 온 내 눈에는 그것들이 희미하게 번져 보였다. 그래서 안경을 이마 위로 들어 올리고 그곳을 집중해서 빤히 들여다보았는데, 그때 그 청소년의 표정은 안 보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포스기 조작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배달앱별로 따로 터치해서 들어가야 되었고
배달기사를 콜 하는 것도 복잡했다.
그러는 중에도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응대해야 했고 손님이 나가면 계산을 하고 테이블을 치웠다.
근처가 학원가라서 학생손님이 주를 이루었는데 우리 시대에는 없었던 더치페이로 분할결제라는 걸 해야만 했다.
거기다 휴대폰을 포스 단말기에 가져다 대는 결제방식...
하.... 너무 어려웠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배달주문은 쏟아졌고 메뉴에 맞는 토핑을 올리고, 반찬과 수저요구 여부에 맞춰야 했으며, 어떤 메뉴는 뚜껑 있는 용기를 사용하고 어떤 메뉴는 사각용기에 담아서 실링처리를 해야만 했다.
또 매장손님 우선이라는 원칙이 있어 포장도중에도 손님이 오면 물을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느라 주방에서 차례대로 나오는 배달음식들이 창구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방에서 사장이 소리쳤다.
"네가 해!"
내 선임은 재빠르게 밀린 배달포장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테이블 주문을 받고 치웠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불안함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