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윤활유
우리 부부는 대화가 많은 편입니다. 그 덕에 사이가 좋지만 가끔은 오해가 쌓이거나 다툼이 일기도 하지요. 그때도 말, 아니 정확하게는 말투 때문에 기분이 나빴어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데 아내의 말투가 꼭 저를 동생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무시하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왜 이러지? 벌써 콩깍지가 벗겨졌나?' '내가 문제인가? 내 귀가 잘못되었나?' 하며 속을 앓았어요.
세 자매 중 맏이인 아내는 대학 졸업 후 학원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의 성향에 맞게 학원 운영을 꽤 잘하는 편이었어요. 가끔 일찍 퇴근하면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학원에 들러 마무리를 도왔습니다.
"해율이, 여기 와서 예쁘게 앉아!"
"현찬이는 오늘 선생님이 적어 준 부분까지 다 풀고 집에 가!", "알았지?"
"하준이는 교실에서 뭐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지!"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는 능숙했고 말씨는 또렷했습니다. 그런데 곁에서 지켜보며 깨달았습니다. 그 말투가 그대로 제게도 이어졌다는 사실을요.
"오빠, 여기 와서 앉아. 밥 먹어."
"오빠, 침대 정리 하고 출근하면서 쓰레기 버려. 알았지?"
"오빠, 내가 밤늦게 영화 보면 안 된다고 말했지?"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그렇습니다.
아내가 맏이로서, 또 학원 선생님으로서 몸에 밴 말투를 그대로 쓴 것이지요. 동생처럼, 아이처럼 지시를 받는 기분이 드니 은근히 상처가 되었던 겁니다.
“여보, 부탁하는 말투로 해 주면 좋겠어. ‘이거 해’ 대신에 ‘이거 좀 해 줄래?’처럼 말이야.”
제 말에 아내는 잠시 저를 바라보다가 꺌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내가 정말 그랬어? 그거 딱 학원 애들한테 하는 말투네.”
"그래서 많이 섭섭했어용?", "아이구, 기분이 그렇게 나빴엉?"
농담처럼 달래는 아내 덕분에 마음이 녹았습니다. 물론 그 뒤에도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지요. 하지만 아내는 노력했고, 이제는 “오빠 이것 좀 해줘~ 알았지~~” 하는 부탁이 제법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물론 화가 날 때는 예전보다 거친 말도 나오지만요.
얼마 전 대화가 너무 없어서 이혼한다는 지인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무언가 풀지 못해 입을 닫았겠죠. 그러나 침묵이 습관이 될 때까지 오래가서는 안됩니다. 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습관이 되면 익숙해지고 침묵과 방치가 익숙해지면 대화가 불편해집니다. 예전 정비소에서 자주 보던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처럼 '열고 풀고 대화하자!'라는 문구를 만들고 싶어요. 가족에게 대화는 엔진에게 윤활유입니다. 매끈한 기름이 엔진을 생생하게 보호하듯 대화는 가족의 정을 끈끈하게 합니다. 대화가 사라지면 처음에는 가족을, 후에는 자신마저도 잃게 됩니다.
말은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오해를 걷어내는 인간만의 선물이지요. 쓰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아낄 이유가 없습니다. 대화,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는 그 일. 사자 가족이 서로의 얼굴을 핥듯, 우리의 사랑과 존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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