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어줄 사람
저는 울보였어요. 거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대장부 못된다던 할머니의 위로도 터진 눈물을 막지는 못했지요. 누나와 말싸움 지면 울고, 친구와 달리기 시합에서 넘어져 울고, 선생님이 매를 들면 맞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리고 보는 울보였습니다.
어느 날은 통학 버스 안에서 이번에 내린다고 하니 안내양 누나가 실실 웃으며 "싫은데~" 하는 거예요. 집은 점점 가까워 오는데, 누나는 딴청을 피우며 기사님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았지요.
이대로 시내까지 가 버리면 엄마를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습니다.
신이 났던 누나는 예상치 못한 저의 구슬픈 울음에 난감해하며,
"미안해, 장난이야 장난~"
"네가 너무 귀여워서 장난친 거야 울지 마, 미안해~" 했어요.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어깨를 들썩이는 저에게 커다란 창문 사이로 몸을 반이나 내밀고는 하얀 손을 흔들며 윙크를 날려댔지요.
그랬던 쫄보가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을 외쳐대며 제대하고 사랑을 만났습니다. 정말 멋진 사나이가 되고 싶었어요. '아내의 눈에 눈물 맺히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 굳은 다짐도 수백 번 했지만 삶은 뜻대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넘어지는 순간마다 위로처럼 건네는 말. 하지만 살다 보면 깨닫습니다. 그 내리막이 하염없이 이어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요.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 도무지 멈출 줄 모르는 추락 감 속에 희망조차 무거운 짐이 될 때 말이에요.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다음 주에는 상황이 달라질 거야.'
'내년에는 안정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건네는 답 모를 질문들이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런 확신 없이 단념할 수밖에 없는 하루를 간신히 견딥니다. 세상은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하지만, 희망은 보이지도 않아요. 무너질 듯 무거운 몸이 마음을 더 괴롭힙니다. 세상에는 누나만큼 말 잘하고 유식한 사람이 많아요.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매번 뒤처지는 나를 발견합니다. 버스 안내양의 손에 손목을 잡혔을 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몸과 마음을 억압하였던 것처럼 사는 내내 벗어나지 못할 사슬이 가슴을 누릅니다. 그 괴로움과 좌절의 벼랑에서 아내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아내도 울었어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목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지요.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진짜."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걸까."
"나 정말 어른이 된 후에는 누구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욕 한 적 없고, 사소한 일탈 한 번 모르고 살았는데 도대체 내 삶은 왜 이렇게 풀리지 않는 걸까?" 하면서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오빠, 괜찮아. 그래도 우리 끝난 건 아니잖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조금 더 낮춰서 살자."
울보 사나이는 아내의 위로가 참 고마웠어요. 남편은 사실 내가 떨어지면 가족이 함께 추락한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거든요. 아내의 팔을 붙들고 실컷 울고 나니 곧 죽을 듯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시원해졌어요. 눈물이 얼굴만 아니라 마음의 찌꺼기도 씻은 듯했지요. 얼어붙은 가슴을 녹인 듯 심장이 따뜻했어요. 슬픔의 둑이 터진 것처럼 평온이 찾아들었습니다.
마음속 좌절의 둑이 또 언제 차오를지 모르지만 이제 크게 두렵지 않습니다. 함께 울어줄 아내가 있으니까요. 눈물을 닦아 줄 가족이 함께니까요.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손이 얼굴을 만져 주었을 때 나는 웃었고, 금세 뛰었습니다. 아내는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괜찮다 하고, 아이들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아빠에게 미소를 보입니다.
저 강한 세상에 또 한발 내밀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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