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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by 하난

유기견 보호소 봉사, 법학적성시험 대비 동아리, 토론 동아리 및 범죄피해자구조센터 인권지킴이, 해양수산부 개최 해양사고 원인규명 대회, 북클럽, 글쓰기 강좌, 보드게임 알바와 교내근로...

지난 1개월 반 동안 한 활동이다. 여기에 각종 팀플 조장까지 더해졌으니 생활은 알 만 했다. 활동을 마치고 집에 가면 쓰러져 잠들기의 반복. 내몰리듯 만난 여러 모임까지 합해서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결국 지쳐 쓰러졌다. 목이 퉁퉁 붇고 입안은 염증으로 괴사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위산은 역류하고 가만히 서 있어도 어지럽고 열이 났다. 근무중 눈물을 보인 끝에 알바 하나를 그만뒀다.


그러나 스스로 불러온 재앙은 그것 하나 뺀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끊임없는 과제와 회장으로서, 팀장으로서, 조장으로서 계획을 수립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피피티를 만들기 연속. 전공 분량은 또 왜 이리 많은지. 1학기와 달리 꾸밀 새도 없어 일어나자마자 모자를 눌러쓰고 등교하기 일쑤였다. 너무, 힘들었다. 재밌기도 했으나 그것도 어느 선까지지, 너무 힘들었다. 일이 많은 것도 많은 건데, '장(leader)'을 달고서 업무량에 치여 제대로 제몫을 해내지 못하는 한심한 꼬락서니가 꼴보기 싫었다. 괜히 위축되었다. 자신감이 줄고 말이 꼬였다. 뇌도 포기 선언을 한 것인지 누군가와 대화를 해도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내가 불러온, 스스로의 한계를 알지 못한 멍청한 선택이었다는 게 무엇보다 분하다.


얼마전, 연휴를 맞아 부모님과 영화관에 갔다. 영화 '보스'를 보았는데 얼마나 유치하고 지루하던지, 별점 1점과 2점중 고민하는 와중에도 보스로스의 책무를 역설하는 그들에 움찔 몸이 떨렸다. '나름' 열심히 했으니까, 라는 흔한 말로 안주하고, 회장이라는 자리에만 취해서, 그 스스로의 업무를 망각한 채 어느 하나 제대로 쳐내지 못하는 꼴이란 얼마나 우스운가. 코미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한번 제동이 걸리자 모든 게 멈췄다. 모든 게 마음 같지 않고, 그저 분하고, 힘겨웠다. 이건, 그래. 그저 그런 대학생의 하소연이다. 헤벌레 일을 벌여놓고 어찌해야할 지 몰라 허둥거리는, 어디라도 이걸 터놓지 않고는 무너질 것 같아 울먹이는 이의 시시껄렁한 주절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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