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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횡포 아래

by 하난

해가 자취를 감추고, 달의 횡포가 시작된 시각. 그곳은 도심 속 외진 공간에 자리했다. 지도를 살피고 이리저리 재 보고서야 입구를 찾을 수 있는, 들끓는 사람들 속 홀로 선 외딴섬. 그곳으로 향했다.


어두운 실내. 자욱한 연기와 커다란 소음.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사람들과 무어라 외치는 직원. 어지러운, 그러나 고요한 공간 속을 헤치고 들어간다. 커다란 구형 얼음이 덩그러니 놓인 투명한 진토닉. 지난날 마셨던 것에 비해서는 다소 투박한 느낌이 있는 음료를 홀짝이며 공간을 메운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둥둥- 울리는 귓가와 발랄하게 오르는 음. 가벼운 음과 박수 소리, 환호하듯 터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것은 꼭 숲 여우가 우는 듯, 푸른 자연을 일군다. 거대한 숲, 빼곡한 나무들, 청명하게, 다소 우스꽝스럽게 울리는 짐승의 울음.


늦게 들어간 지라 순식간에 첫 DJ의 음악이 끝났다. 그와 자리를 교체한 중단발의 DJ. 애인과 나를 공연에 초대한 애인의 친구이자 헤어디자이너 -그곳에서의 DJ-의 연인이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에 애인과 마주 고개를 끄덕인 뒤에는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앞선 사람과 유사한 음을 공유하지만 사뭇 다른 소리. 펌핑하듯, 뛰어오르듯 같은 박이 이어지다 변주된다. 하얀색이 섞인 짙은 초록의 초원을 메우는 함성. 단단한 몸의 남성이 말과 초원을 가로지른다. 그리고는 줌 인. 말 위에 올라탄 그의 땀과 근육, 첨예한 눈과 즐거움을 담은 눈동자가 확대된다.


장면 전환. 그는 얼키설키 엉킨 밀림 속을 뛰논다. 강하고, 가볍게 뛰어오르는 그의 몸. 그에게로 쏟아지는 동료들의 함성.


환호와 박동으로 차오른 음이 잔잔해진다. 차분하게 깔린 음 위로 비-비- 신음 같은 소리가 중첩된다. 번뜩이는 까마귀의 눈. 그는 어느새 어두운 아스팔트를 달린다. 꼭 상자에 가두어진 듯, 오른쪽 벽을, 왼쪽 벽과 천장을 마구잡이로 달리고, 또 달리는 청년.


이어 찰랑임이 어우러지며, 이명이 깔린다. 찰랑이는 비즈 발. 서로 부딪히는 구슬과 부드럽게 흐르는 천.


빠져들기 직전, 귀를 자극하는 기계음. 담배 냄새와 섞여 다소 위협적인 그것. 심장박동처럼 일정하게, 그러나 이변적이게 작동하는 기계음 너머로 불길이 인다. 속을 짓누르는 어두움.


순간, 춤추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과 머릿속 밀렵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온통 즐거운 이들로 가득해진다.


자유의지의 자의적 박탈을 향유하는 사람들. DJ에게서 나오는 연기가 이미지를 강화한다.

이어 벽을 누군가 거대한 벽을 두드린다. 스테인리스로 된 벽의 한 점에서 퍼지는 진동. 유리에 금이 가듯 벽이 일그러진다. 연속되는 타격. 끝내 부서지지 않는 벽. 포기한 상대는 돌아가고, 벽만이 자리한다.


잠잠해진 벽을 멀거니 보노라면 의문이 든다. 상대는 진정 벽을 부수고자 했는가.


그녀의 음악은 사람을 담았다. 그들의 억압, 그들의 즐거움, 그들의 연약함과 그들의 일상.


그녀의 음악은 시원하게 쳐 주지 않는다. 올라가듯 멈추고, 내려가듯 올라간다. 감질맛이 나 아쉬움을 담은 숨을 내뱉을 때, 그게 진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벽을 부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한 채, 벽을 향해 내던지는 몸. 보여주기식으로, 그러나 분명 간절함을 담고 시도되는 충격.

이미 안 되리라는 생각을 한 채, 삶에 엉거주춤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의 모습 아닌가.


완전히 올라가듯, 올라가지 못하고, 완전히 내려가지도 못하는 그것은 그러나 이어진다. 어떻게든 이어지고, 어떻게든 즐겁다. 이 짓눌림과 아쉬움이, 포기와 즐거움이 삶의 흐름 아닌가.


그녀의 노래는 그렇게, 삶을 담았다.


어느덧 한 시간이 흐르고, 우리를 초대했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리고 등장한 그가 연인의 음악을 이어받는다.


그는 그녀와는 사뭇 다른 음악을 한다. 유사한 소리의 반복, 변주임에도 그의 소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두들겨지며 소리를 내는 북. 찰랑이고 흔들리는, 진동하는 드럼. 약하게 들려오는 바람소리. 그러나 그곳에는 사람이 없다. 연주자는 오롯이 악기, 그 자체이다. 홀로 연주하는 악기와 그 너머의 자연.


떠밀려오는 물과 바람. 세상.

퉁퉁, 굴러가는 축구공. 쓰러지는 볼 바구니와 어지러진 체육관. 확대되는 조명, 조명.


두 개의 선명한 푸른빛이 공간을 스캔한다.

쇠로 된 거대한 볼. 중앙이 움푹 들어간 그것의 중간을 두드리다 테두리로 접어들고, 테두리를 메우다 중심에 힘을 가한다.


기계음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안 나오냐’를 어설프게 말하는 것 같은 소리에 웃음을 터트릴 무렵, 소리가 빠르게 중첩. 쌓이고 흩어져 기묘한 형태로 바뀐 음의 절정.

엉킨 나뭇가지 틈으로 솟아난 창귀.


그의 음악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 그의 공연에 초대되어 갔을 때의 음악이 세상과 사람을 다루었다면, 이번은 보다 세상에, 음악에 중심이 옮겨가 있었다.


그게 참 재밌었다. 그의 연인의 음악은 사람을 노래하고, 그는 세상을 노래한다는 게. 그들의 함께 만들었던 이전의 음악은 세상 속 삶을 노래했다는 게. 두 사람의 사고가 섞여 들어, 서로가 서로의 결핍이 되어, 서로가 서로의 충만이 되어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 같아 낭만적이었다.


처음 연주했던 사람과 그 뒤에 이어진 두 사람의 곡들. 모두 유사한 소리를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흥미로웠다. 첫 번째 분이 사용할 때는 짐승의 울음으로 들렸던 소리가 두 번째 DJ에게서는 사람들의 함성으로, 세 번째 DJ에게 와서는 몰아치는 물의 비명으로 들렸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그저 어떠한 박자에 불과하다고 느꼈던 소리들이 각기 다른 색을 입고, 상이한 감정과 이미지를 구축해 낸다는 것도 재미있다. 결국 디제잉도 하나의 자기표현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문학과 유사하다. 때문에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공연 중 조금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조금 더 깊이 연상하기 위해 눈을 감고 들리는 것, 떠오르는 것을 기록해 나가는 내게 애인이 몸을 부딪혀 왔다. 손을 이끄는 그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린 채 가벼이 눈을 감고 편안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경직되어 있던 몸이 그를 보자 조금씩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꽤나 오래 음악을 좋아했던 이런 류의 공연을 즐겼던 그이기에 무언가를 연상하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자유로움을 지닌 듯했다. 그런 자유로움이 나로 하여금 해방감을 부여했다. 그를 보며, 이후에는 그저, 즐겼던 것 같다.


어색하게나마 무릎을 까딱이고, 그와 마주 웃고, 옆에 자리한 인테리어용 조명을 가지고 놀며.


이리저리 길게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것들, 생각났던 것들을 끄적이긴 했으나, 사실 다 떠나서 즐거웠다. 자욱한 연기도, 가볍게 홀짝이는 술도, 둥둥 심장을 울리는 박동도, 환호하는 사람들도, 모두.


오랜만에 즐긴 공연은 그렇게, 미소를 머금은 채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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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