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선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소외된 사람과 소외된 이를 괴롭히는 무리 중 후자를 택했던 그는 눈을 붉게 물들인 채 가까스로 그날의 일을 고백했다.
주섬주섬 과거의 기억을 꺼내드는 그는, 계속해서 주어진 선택의 상황과 그 속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자신을 고했다. 계속해서 그의 볼을 적시는 눈물에 우리의 옛 기억과 몇몇 이야기들, 과거의 내가 교차해서 떠올랐다.
그중 한 도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는 전쟁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로 그 구역에서는 내로라하는 부자의 아들이었다. 그의 집에는 하인 부자가 있었는데, 아들쪽이 그와 동갑이었다. 도련님과 하인이라는 직위 차이가 있었으나 둘은 곧잘 어울렸다. 연 날리기를 하고, 나무에 올랐으며, 주위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날도 여느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는 연날리기를 했고, 연이 날아가자 하인이 그것을 찾아오겠다며 달려갔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하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어 그는 하인을 찾아나섰다. 연이 날아간 방향으로 다가가자 구불구불한 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끝, 구석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슬금슬금 그쪽으로 향했다. 벽에 붙어 구석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곳엔, 평소 그를 적대하던 무리와 그들에게 강간당하는 하인이 있었다. 그는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입을 막고 집으로 향했다. 그의 뒤로 하인의 옅은 신음만이 멤돌았다.
하인을 폭행하던 무리는 힘이 세고 다수였다. 당시 그 사회에서 도련님이 하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드문 일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할 수 있었단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일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날의 잔상이 그를 괴롭혔다.
이토록 극단적인 상황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끝없이 양심을 시험당한다. 안위와 신념을 저울질하고 정의과 일상을 가늠한다. 그리고 대부분, 안위와 일상을 택한다.
나무랄 것도 비난할 것도 아니다. 일상을 포기한 신념이란 드물고, 그렇기에 찬양받는 것이다. 그것이 당연하지 않기에. 너무도 괴로운 일이기에.
낯 두꺼워지는 요즘, 이런 선택은 스스럼없이 행해진다.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퉁쳐지는 선택을 보노라면 어딘가 씁쓸한 기분을 떨쳐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란 얼마나 숭고한가. 끝없이 괴로워할 줄 아는 마음은, 그날의 노여움과 죄책감에 눈물 지을 줄 아는 곧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좋다. 언제나 정의에 가까운 선택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에 아파할 줄 알고, 머뭇거리며 뒤 돌아보는 이들이 좋다. 그 머뭇거림이, 주춤임이 우리가 우리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적어도 아직은 끝이 아니라는 희망을 불어넣는다.
그렇기에 일평생을 괴로워하는 이들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들이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들처럼 살길 바란다.
우리가 마음껏 부끄러워하길. 그리하여 적어도 마음을 놓지는 않길. 그 부끄러움이 모여 세상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