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아득해진다. 뜨거운 날숨을 토해낸다. 몸안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다. 안은 이리도 뜨거운데, 몸에 한기가 들어 어깨와 턱이 바들바들 떨린다. 해열제 두 알을 삼켰다. 어서 누워야 할 것 같다. 지금 몇 시지? 시간만 확인한 채 이불속을 파고든다. 이불을 당겨 정수리까지 덮는다. 이불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공기가 칼바람처럼 느껴진다. 몸을 동그랗게 말아버린다.
의식이 자꾸 끊긴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익숙한 장면들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거실에서는 아이들이 아직 놀고 있다. 책을 보는지, 그림을 그리는지, 영상을 시청하는지. 소파에 기댄 작은 어깨, 바닥에 어질러진 색연필과 색종이들,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 지금은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머릿속엔 생생하다. 눈을 떠본다. 감고 있던 게 맞구나.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 것들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기억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몇 시지?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이불속으로 손들이 들어온다. 잠시만, 제발 잠시만 내버려 뒀으면 좋으련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들을 이불 밖으로 밀어낸다. 그런데, 밀려난 줄 알았던 그 손들이 다시 스르륵 파고든다. 차가운 손. 무수히 많은 낯선 손. 이불 안이 점점 좁아진다. 손목을, 발목을, 팔뚝을,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그 손들이 어느새 천천히 조여오기 시작한다.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마치 벽을 타며 기어오르는 그 무언가처럼. 목구멍으로 찬 공기가 훅 밀려 들어온다. 기침을 토해내고 싶지만 소름 끼친 낯선 손하나가 입을 틀어막는다. 몸이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할 것만 같다. 꿈이라는 것도, 현실이라는 것도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고 의식은 뿌연 물속에 둥둥 떠있는 기분이다. 손들에게 꽁꽁 묶인 채로 둥둥. 기분 나쁘게 둥둥. 그런데.... 도대체 지금 몇 시냐고!
확, 눈이 떠진다.
입술은 말라붙고 온몸은 흠뻑 젖어 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온몸이 축축하다. 방 안 공기도 따라 축축하게 느껴진다. 이상하리만큼 집안은 조용하고 컴컴하다. 시계를 본다. 새벽 2시. 거실로 나간다. 널브러진 색종이들, 여기저기 쌓여있는 책들, 구석구석 장난감 갖고 논 흔적들, 마른과자 부스러기, 마시다 남은 은 우유컵. 아이들이 저녁을 보내고 남긴 흔적들. 무심한 채 그대로 남아있다. 이 작은 어지러움으로 몇 시간 동안의 그들의 행적이 유난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이들 방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첫째 아이는 이불을 돌돌 말아 잠들어있고, 둘째 아이는 이불을 걷어차고 엎드린 채 잠들어 있다.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을 닦아주고 바로 눕힌다. 무심한 듯 고요한 숨결. 평온한 얼굴. 하루를 다 쏟아붓고 고요히 잠들어버린 작은 존재들. 오늘 하루가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평범한 날이었기를 바라며 문을 살며시 닫았다. 조용히 닫힌 방문 너머로 아이들의 소리가 느껴진다. 나도 숨을 내쉰다. 길고 느리게.
고열은 가라앉았다. 그 끈질긴 손들, 벗어날 수 없던 압박감과 무게감도 지금은 느슨해졌다.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잠깐 놓였을 뿐. 그 정도면 된다. 이따금 덮쳐오는 고열 같은 삶이라도, 결국 이렇게 다시 식는다. 다시 움직이면 된다. 그리고 일상에 복귀한다.
부엌 불을 끄고, 다시 방으로 향한다. 열은 내렸어도 약간의 두통은 남아있다. 두 알 남은 해열제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참 동안 멈춰 있던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지금...... 몇 시지?
#육아동지들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