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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Nov 06. 2024

어머니, 신상 기저귀 좀 쟁여놔야겠어요

미치겠다. 즐거워 미치겠다.

 육아는 체력전이라 했는가. 체력이 달리면 정신적으로도 확실히 힘들다. 아기 낮잠 겨우 한 시간, 그것도 운이 좋으면.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날은 그렇게도 억울할 수가 없다. 푹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도대체 저 작은 생명체는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먹고 싸고 자고만 하던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며 본능적인 전진 욕구에 어디 머리라도 콩 찍힐까 온종일 아이를 보고 있어야 하는 순간도 온다. 그렇다. 모든 건 순간으로, 각 단계를 충실히 수행하고 그다음단계로 또 끊임없이 나아간다. 소파를 잡고 일어서는 순간이 왔다. 아니 단계가 드디어 왔다.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기어 다니는 것과는 비교하면 조금 더 깊은 긴장감이 감돈다. 소파에서 손을 떼는 순간이 또 오고야 말거란걸 예의주시하며 기다린다. 너무 분석적인 엄마인가. 육아는 체력전이라고 했다. 예민한 정신 또한 체력의 방전에 기인한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모를 일에 대해 기민한 대처를 하기 위해 긴장감은 언제나 옆에 두었다.


 두 발로만 의지한 체 한 걸음을 기어이 떼 놓고선 저도 당황스러웠는지 나를 쳐다본다. 한발 한발 휘청거리며 내딛는 감동적인 모습을 놓치기 싫어 재빨리 폰카메라를 켠다. 아이는 제 두 발의 쓰임을 완벽히 이해하고 본격적인 탐색놀이에 돌입한다.


 이 순간부터는 집을 치운다는 것에 별 의미가 없다. 깨끗함 5분 컷, 혹은 아이 잠잘 때 반짝, 혹은 보이는 곳만 대충이라는 슬로건을 스스로 내걸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면 한결 편한 육신으로 저 공중에서 유체 이탈된 정신을 보는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육아는 체력전이라 했으니. 아껴야 될 체력.


 요즘 같이 출산율이 떨어지는 시대에, 출산 장려글을 써도 모자랄 판에 유체 이탈이니, 체력전이니, 방전이니 긴장감이니 이런 단어들로 육아에 더 거부감을 들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지만, 육아는 어렵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에는 내가 거부감이 들기에, 징징거리는 소리일지라도 일단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당신은 도대체 뭘 말하고 싶다는 것이오?라고 묻는다면 이제부터 말하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고생 집구석 버라이어티라도 힘든 순간을 깡그리 휘발시키는 이 작고 귀여운 미친 존재감 때문에 없는 체력을 만들어서라도 매 순간, 매단계마다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지나고보면 힘듦은 옅어지고 행복했던 기억이 더 짙게 남아있으니. 원래 이렇게 예민하고 기민한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 사람이 변했을까 생각해 보면 언제나 답은 하나다.


나는 엄마이니까.



사진첩을 뒤적이다. 예전 사진을 보며 써본 글.

오래지나고 보니 참 예쁘다. 그래서 그립다. 그당시에는 안보였겠지. 힘든것만 보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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