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왔다. 베란다 창틀 밖에는 폭 30cm, 길이 3.5m 정도 되는 좁고 긴 공간이 흙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아이 키 정도 되는 아로니아 나무가 어울리지 않게 서 있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무가 시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심어놓은 이유조차 알 수 없던 그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베란다 밖의 공간은 기능을 잃은 채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차라리 이사할 때 베란다를 확장해 버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둘째가 한 살이 되었을 무렵, 서점에서 경품으로 받은 해바라기 씨앗이 그곳에 심어졌다. 잡초 하나 없는 메마른 흙에 작은 씨앗이 뿌려지고, 그 씨앗이 흙을 뚫고 올라오려는 의지를 품었다는 사실이 무언가를 바라고 기다리는 일의 특별함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며칠 뒤, 아로니아 나무가 뽑힌 그 자리에 떡잎 두 개가 8 자 모양으로 앙증맞게 솟아올랐다. 손톱만 한 초록 떡잎 두 개가 무용했던 그 공간을 어느새 생기 넘치는 텃밭으로 바꾸는 순간이었다. 마치 작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첫째 아이의 눈망울 속에서 기쁨이 샘솟는 걸 보았다. 작은 손으로 베란다의 호스를 끌어와 텃밭에 물을 주며 저보다 작은 말 못 하는 생명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먹어. 쑥쑥 자라.” 그러곤 매일같이 알뜰살뜰 돌보았다. 설마 더 자랄까, 설마 꽃을 피울까, 설마 씨앗을 품은 열매가 영글까. ‘설마’했던 모든 순간이 아이의 눈과 입과 손, 그리고 마음으로 ‘정말’이라는 순간으로 이어졌다. “엄마, 너무 신기해! 진짜 신나!” 아이에게는 씨앗이 싹을 틔우는 일이 마치 꿈을 키우는 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베란다에 심어진 그 씨앗은 아이가 가꾸는 첫 번째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잎사귀가 차례로 나고 줄기가 길어지며 굵어졌다. 줄기 끝에는 꽃받침이 생기고, 그 안이 둥글게 부피를 채워 나갔다. 노란 꽃잎이 하나둘 벌어지고 꽃가루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곳은 곧 수확할 씨앗들로 채워질 터였다. 어느새 아이보다 내가 더 기대되고 신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바라기를 처음 키우다 보니 언제 수확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유튜브에서 “고개가 푹 숙여지면 그때 줄기 윗부분을 잘라 수확하면 된다”라고 했지만, 어쩐지 시기를 지나버린 듯했다. 수백 개 중 우리가 수확한 것은 겨우 두 개 정도였고, 나머지는 이미 시간이 지나 말라버린 쭉정이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도 나도 실망했지만, 단단하게 여문 두 개의 씨앗을 다음 따뜻한 계절에 심기로 하고 잘 보관해 두며 위안을 삼았다.
이듬해 봄, 우리는 다양한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늦가을 공원에서 주워 온 칠성밤과 도토리를 가장 먼저 심었고, 봄이 완연해지자 1,000원짜리 다이소 식물 씨앗들을 심었다. 초당옥수수가 나오는 6월에는 먹기 전 몇 알을 떼어 심었고, 8월에는 설마 싹이 나겠냐는 마음으로 먹다 뱉은 수박씨를 심었다. 9월에는 코스모스와 봉선화 씨앗을, 옆에는 토마토와 상추, 아보카도, 그리고 수경재배로 뿌리를 내린 고구마까지 심었다. 싹을 틔우다 시들어버린 것도 있었고, 자라는 잡초를 끊임없이 뽑아야 할 때도 있었다. 때아닌 진딧물의 공격으로 약을 치고 뿌리째 뽑아내야 했던 식물도, 신경 쓰지 못해 방치되어 시들어버린 식물도 있었다. 모든 것이 성공적일 순 없었지만, 실패 속에서 기다림과 책임을 배우며 아이도, 식물도 조금씩 자라났다. 겨울이 오는 지금 텃밭에는 봉선화가 자라고 있다. 꽃이 피면 손에 물을 들이자고 첫째가 말하는데, 아무래도 꽃보다 겨울이 먼저 올 것 같다.
나의 텃밭을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씨앗을 심었고, 흙을 뚫고 나오는 초록 떡잎 같은 아이가 내 인생을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이던 땅을 생기가 도는 근사한 텃밭으로 바꾸어 주었다. 마치 선물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텃밭의 작은 식물들을 돌보며 속삭이듯 다정히 말해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작 나 자신은 아이에게 그만큼 다정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언제쯤 자랄까, 빨리 컸으면 좋겠다. 꽃은 필까. 열매는 맺을까. 잘 영글까.’ 설마 하는 의심과 걱정으로 아이를 재촉했던 마음이 후회스럽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뜨면 한 뼘 더 자라 있고 그다음 날엔 작은 꽃을 피우고, 어느새 열매를 맺으며 무언의 신뢰를 보여주는 텃밭의 식물들처럼, 내 아이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자라고 있었다. 더없이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곁에 있어 주고, 아이가 자라는 대로 천천히 기다려 주는 것. 아이가 스스로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날을 그저 고요히 바라보며 함께 또 씨앗을 심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