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50대여자의 여행법
여행이라는 선물이 필요해!
나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편이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스트레스를 잘 쌓아두지 않고 푸는 편이다. 나에게 있어 스트레스 해소법 중 첫째가 바로 여행이다. 나의 여행은 떠나기 6개월 전부터 이미 시작된다. 숙소부터 시작해 기차표, 티켓 예약까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철칙은 이 모든 것을 절대 단시간에 몰아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6개월 동안 아주 천천히 준비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여행이며 설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끔 주위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혼자서 준비하려면 귀찮지 않나요?” 그럴 때 난 이렇게 반문한다. “그 시간들이 어떻게 귀찮을 수가 있나요?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가슴 뛰게 하는 여행인데...”
그렇다. 나는 세 번의 여행을 떠난다. 첫 번째는 여행을 준비하며, 두 번째는 실제 여행지를 여행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돌아와서 여행을 회상하며 여행기를 쓰면서 비로소 나의 여행은 완성된다. 그 과정이 적어도 1년 이상이 걸린다. 그리고 이 세 번의 여행이 끝나면 나는 다시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준비한다.
그런데 2020년 1월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쓴 후 나는 4년여 동안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을 가지 못했다. 3년은 팬데믹으로 인해... 그리고 1년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엄마 때문에... 엄마가 2023년 1월 6일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2023년은 나에게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2020년 아버지가 파킨슨 병을 진단받은 후부터 아버지의 보호자 역할을 했지만, 아버지의 병은 서서히 진척되는 병이라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새벽에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 사고는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것만 같았던 두 분의 부모님이 이제는 정말 우리와 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2020년부터는 아버지의 보호자로, 2023년부터는 아버지, 엄마의 보호자로 나는 최선을 다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두 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형제가 다섯이지만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내가 부모님 보호자가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기는 것이 버겁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일을 나는 당연히 나의 몫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일상은 서서히 부모님 우선으로 돌아갔다. 두 분 다 요양병원에 계시게 되면서는 엄마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퇴근 후라도 언제든 갖다 드리고... 매주 면회와 외출을 번갈아 다녀왔다. 특히 외출 때 두 분을 집으로 모시고 와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목욕 시키고 병원에 다시 모셔다 드리고 집에 오면 기진맥진... 그러면서도 내가 버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 했다. 나의 몸에서 경고 메시지가 울리기 전까지...
그 날도 부모님 두 분 면회 후 집에 돌아와 기진맥진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데 둘째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수고했다는 말보다 “이걸 했어야지... 저걸 더 갖다 드렸어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의 브레이크가 고장나고 만다. 브레이크를 제어하지 못한 채 언니에게 쏟아 부었다. “내가 알아서 하니 더 이상 간섭 하지마.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도 버겁다고...”
전화를 끊고 나는 오랫동안 소리내어 펑펑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늘 하던 얘기로 별 말도 아니었는데 내 안에 쌓이고 쌓인 것이 언니의 한 마디에 폭발하고 만 것이다.
나 자신과 대면하게 된 순간이었다. ‘내 안에 있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었구나... 나 자신을 돌보지 않아 많이 힘들었구나.’
이 사건은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일단 내가 행복해야 지치지 않고 부모님 보호자 역할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러려면 나에게 여행이라는 선물이 필요했다. 부모님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추, 임용 준비 접고 여행을 떠나다
심과 추는 한때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다른 학교에 있지만 마음이 맞아 한번씩 만나는 사이다. 내가 여행을 잘 다니는 것을 알고 한번씩 “다음에는 우리랑도 같이 가요.” 하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꾸리며 여행을 한 달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특히 이 둘은 임용을 준비 중이라 겨울에 여행을 가기에는 너무나 변수가 많아 생각지도 않았다.
그중 한 명인 추는 대학원에서 심리 과정을 마쳐 올해 국어에서 상담교사로 전환하고자 임용을 준비 중이었는데 대뜸 전화를 해 “저, 상담교사 임용 준비 접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추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파트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캄캄한 어둠이 나를 지배했습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실에 앉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라져도 나쁘지 않겠네...” 다행히 추는 심리를 공부하던 중이라 자신의 증세를 알고 교수님을 찾아가 상담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의 상담을 통해 만약 임용에 합격해 상담교사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에게는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추에게 그래도 대학원 과정을 다 수료하고 아깝지 않냐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추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며, “이 공부는 결국 추를 살리는 공부였네. 잘 결정했어. 그럼 나랑 이탈리아 여행이나 가자.”라는 말을 대신했다. 추는 두 번의 망설임도 없이 오키~~
거기에 더해 심까지 합류하게 된 것이다. 가장 많이 나의 유럽 여행을 부러워하고,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던 심이 남편의 기꺼운 허락을 받고 함께 합류하기로 결정~~ 이렇게 우리 셋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