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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ul 11. 2021

정치의 계절

99학번인 나는 2012년 8월 13년 반 만에 졸업했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대신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를 하기로 했다. 영전강이라고 부르는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된 제도인데, 영어 수업과 영어 수업과 영어과 행정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영어교사였다.


아버지께서는 2013년 봄부터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 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2012년 가을 경인교대 TESOL을 보내 주셨다. TESOL은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실용적 교수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중등교사 2급 자격증이 있었고, TESOL 자격증은 의미가 없었다. TESOL을 통해 영어를 영어로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는 실용적인 능력을 익히는 게 당시 나의 과제였다.




마침 정치의 계절이었다. 서울시장을 박원순에게 양보한 안철수가 정치적 메시아로서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국민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떠오를 때였다.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 적이 있었고, 사회 정치 운동에 참여한 적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팬클럽 활동을 한 것은, 안철수가 처음 정계에 등장했던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자연인 안철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서는 회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때는 안철수가 대한민국 잘 이끌어 갈 차세대 정치 리더라고 생각했었다.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안철수 팬클럽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안사모에서 활동했었다. 안사모도 막 시작하던 초창기였다. 안사모라는 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팬클럽이었는데, 지역 별 게시판을 통해 지역 오프라인 모임이 자생적으로 생겼다. 수원에 사는 나는 경기남부지역 모임에 나갔고, 경기남부지역 임시 지역장으로 추대되었다. 중앙본부에서 지역의 조직과 리더십을 승인하기 이전이었다. 나에게 사람을 끄는 리더십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그 당시 내가 어머니 소유의 분위기 좋은 카페를 내가 운영하고 있었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기 딱인 장소를 가지고 있어서 내가 리더로 추대되었는지도 모른다. 카페를 운영했지만, 손님이 없는 장사가 안 되는 카페였기 때문에, 백수나 한량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역장이 되면서 경기남부지역은 우리 카페에서 매주 토요일 모였다. 이야기하고, 밥 먹고, 술 한 잔 하는 그런 모임이었다. 전국 지역모임 가운데 가장 활성화된 모임이다 보니, 우리 지역 회원 말고 다른 지역 회원들도 찾아왔다. 그 가운데서는 다른 지역 지역장도 있었고, 일종의 정치꾼들도 있었다. 나 또한 우리 지역 모임을 찾아온 지역장들에 이끌려 전국 지역장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안사모 중앙본부 입장은 창립총회 워크숍을 통하여 지역 리더를 정식으로 뽑겠다는 것이었고, 지역장들의 입장은 기존 지역모임 조직을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 안사모 중앙본부에서 창립총회 워크숍을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하기로 했고, 지역장 모임에서는 어떻게 일본 기업 롯데리조트에서 창립총회를 하냐며 참석을 거부했다. 힘이 있는 세력은 자기가 유리한 곳에서 회의를 열고, 힘이 없는 세력은 회의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 정치다.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생각해 보니 안사모를 따라갔어야 했는데, 안사모 중앙본부 사람들은 만난 적이 없는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지역장 모임 멤버와는 형님 동생 하며 지내던 사이여서, 새로운 안철수 팬클럽을 만드는데 합류했다. 우리는 다음 카페 <대한민국 안사모>를 만들었다. 나는 그냥 형님 동생 하는 분들과 한 배를 탔을 뿐이었는데, 회원을 선동하고 안사모 조직을 배신하고 유사조직을 만든 죄로 안사모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지금 돌아보면, 부여 롯데리조트 안사모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경기남부지역 리더로 공식 인정받았어야 했다. 그때는 정치의 세계를 잘 몰랐다. 만약에 중앙본부 리더들과 먼저 만났더라면, 그분들과 패밀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카페 <대한민국 안사모>는 지역장 중의 대전의 축협 조합장이 개설했고, 카페 관리는 지역장 가운데 가장 젊은 내가 맡게 되었다. 아직 조직이 갖추어지고 임원을 선출하기 이전이라 특별한 직함은 없었지만, 지역장 형님들 모시고 의견을 모으고 조율하고 실무적인 일을 하는 사무총장 역할을 했다. 내가 했던 역할과 일 중 중요한 하나는, 그 작은 모임 가운데서도 형님들 사이에 알력 싸움이 있었는데, 그것을 중재하는 일이었다. 나의 알력 싸움 중재의 방법은, 형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자 그릇에 맞는, 역할과 직책을 하나씩 나누어 드리는 것이다.

    

안철수 팬클럽 다음 카페 <대한민국 안사모>에는 안사모 지역장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활동가라 칭하면서, 안사모 본부와 안철수 최측근이었던 사무실도 드나드는 분이 한분 있었다. 지역장이 안사모를 탈퇴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안사모>를 만든 것도 이분이 바람을 넣었다. 내가 안사모를 탈퇴하고 새로운 안철수 팬클럽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이분에 이끌여서였다. 처음에는 모든 지역장들과 자칭 활동가와 형제 같은 수평적인 관계였는데,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일이 진행되면서, 나는 이 활동가의 참모가 되었갔다.




아버지께서 등록해 주신 TESOL 공부를 하며 영어로 영어를 재미있게 가르치는 영어 선생님으로서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때, 나는 안사모에서 떨어져 나온 <대한민국 안사모>라는 다음 카페 활동하는데 온 힘을 다 쏟았다. 별 의미도 소득도 없는 일을 하면서, 매일 서울의 스타벅스로 자칭 활동가에게 불려 다니며 시답지 않은 일을 했다.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다음 팬카페 하나 운영하며 정치를 주제로 소꿉놀이를 한 셈이었다.


확실히 안철수 지지 정치활동을 하던지, TESOL에 올인을 하던지, 둘 다 하던지 했어야 했다. 둘 사이 양다리를 걸치다가, TESOL 과정을 소홀히 해서 제적당하기 직전에 왔다. TESOL에 전념하고자,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중단하고 탈퇴했다. 영어교육과 졸업하고 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할 수 있는 중등 영어교사 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에 TESOL 자격증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TESOL을 열심히 공부했었더라면 좋은 영어교사가 되었을 것이고, 계속 전공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학교에서 비록 비정규직으로라도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했을 때는, 안철수가 공식적으로 정치참여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 전, 간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안철수가 본격적인 대선 도전을 선언하기 직전,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그만두었다. 정치인 안철수에게 아직 실망하기 이전이었고,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팬클럽 활동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일꾼이 사라진 <대한민국 안사모>의 자칭 활동가는 집까지 나를 찾아왔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좋은 영어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어야 했다. 아니면, 아싸리 팬클럽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안철수 캠프>로 들어가던지 말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자면 안철수 캠프로 들어갔을지라도, 그 주변에 쟁쟁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안철수를 중심으로 철옹성 같이 둘러싸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내가 의미 있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직업 정치꾼이 되기에는 내가 가진 경력 학력 인맥 스펙 돈 아무것도 없었고,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되는데 올인을 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초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되었지만,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되지는 못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영어로 노래하고 놀았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이란 것이 놀이를 통해 영어를 재미있게 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도 열심히 시키는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나는 전공을 살려서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영어교사로 학교에 계속 있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고,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영전강으로 학교에서 계속 일했을 것이고, 안정된 생활을 기반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아 조울증이 재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더 일찍 가정을 이루어 안정된 삶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난 정치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정치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렇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나의 꿈과 장래희망이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살다 보니 되면 하는 것이지, 정치의 바람에 휩쓸리면 인생 개털 된다. 내 인생 열심히 살았더니, 사람들이 불러줄 때 하는 게 정치이다. 정치의 세계의 끝자락에 닿아본 내 경험으로서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 중 하나가 정치다. 역사와 세상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내가 하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정치란 내가 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삶을 열심히 살다 보니, 부르는 국민의 목소리가 들릴 때, 나오는 것이 정치이다. 물론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은 국민의 부름을 듣고 나왔다고 하지만, 그 국민의 부름의 목소리는 대부분 자신에게만 들리는 환청이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올 때면 예전과는 다른 후보를 다른 방식으로 지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정치성향도 달라졌고, 시대가 바뀌면서 정치인 지지활동의 방법도 달라졌다. 정치인을 지지하는 나의 포지션도 달라졌다. 코로나가 정치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이제는 지지자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서 활동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고,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지지방법을 찾았다. 네이버나 다음의 카페에서도 모이지 않는다. 카톡을 통하여 지지자들끼리 소통하고, 후보를 지지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커뮤니티 사이트에 옮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홍보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역할을 했었다. 처음부터 그걸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내가 그것을 잘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지금은 그 역할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었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서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내게 그럴만한 여유도 없다. 낮에는 지금 우리 식구 한 달 벌어 한 달 살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닌다. 언젠가 글을 써서 밥 먹고 사는 작가가 되기 위해 밤과 주말에 글을 쓴다.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주어야 한다.



    

내가 만일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면, 일개미가 아닌 여왕개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월급을 타면서 정치를 직업으로 할 수 있을 때 하기로 다짐했다. 또다시 찾아온 정치의 계절에 휘말리지 않고 내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삶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내가 성공해서 정치의 세계에서 나를 여왕개미의 역할로 부른다 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정치적 실력을 그때는 갖추었다 해도, 굳이 내가 정치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 하면 누구보다 더 잘할 것 같지만, 또 해보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할 사람이 있다. 이제는 정치의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나의 삶에 충실해야겠다. 지금 나의 삶은,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과 주말에는 글을 쓰는 것이다. 언젠가 책 읽고 글 쓰고 유튜브 하고 강연 다니는 작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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