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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24. 2021

매트 깔고 요가하는 선녀님을 보았네

2015년 꽃 피는 봄,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에 왔다. 고도원 작가님께서 맨 앞에 앉으시고 그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하면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처음 본 사람들이 그곳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포옹을 한다. 코로나라서 이런 옹달샘 만의 문화는 중단되었고, 코로나 후에도 영원히 사라질는지도 모른다. 명상센터 옹달샘 안에서만 가능한 문화였다. 명상센터 옹달샘 직원을 아침지기라고 부른다. 아침지기들이 앞장서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모든 사람을 꼭 껴안아 주지만, 아침지기도 프로그램 외의 시간이나 밖에서는 자기들끼리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명상센터 옹달샘 내부에서 참가자들의 힐링을 위한 하나의 심리적 장치일 것이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사감 포옹을 하고, 옹달샘 명상요가 및 힐링 프로그램을 하고, '서양의학+동양의학+자연치유'의 3박자 전인치유라는 녹색 뇌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내 마음이 크게 열리지는 않았다. 아파서 혼자 집에 있다가 오래간만에 밖에 나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쉬는 시간 산책을 하다가 내가 지은 시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을 읊고, 이 시로 만든 자작곡을 불렀다. 일행들은 좋아했고, 일행들의 부축임에 공식 프로그램 때 참석자와 스태프 모두 앞에서 자작시를 읊고 이 시로 지은 자작곡을 불렀다. 뜨거운 호응과 박수를 받고 나의 마음이 열려서, 그동안 사랑 때문에 아파서 조울증에 걸리고 재발했던 이야기 그래서 여기에 온 이야기 등등 내 이야기보따리를 요약해서 풀어놓았다.

    

쉬는 시간에 아침지기 한 분이 다가와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내 이야기를 너무 잘 들었다고 했다. 환한 미소로 응원해 주었다. 아침지기는 당시 결혼 전이었고 솔로였는데, 아침지기 가운데서도 여신 중 여신이었다. 원래 요가 강사였는데 옹달샘에 청년 자원봉사로 찾아왔다가 옹달샘에 아침지기로 눌러앉았다. 옹달샘 요가도 하고, 치유 여행 진행도 하고, 웃음요가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옹달샘 여신이었다. 아파서 옹달샘에 치유 차원에 와서 이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내 심장을 아프도록 뛰게 하는 새로운 여신을 보았다.




아침지기를 향한 사랑이 시작되면서, 더 빠르게 마음이 열리고 회복되었다. 그 이후에도 내가 전에 심심풀이로 작곡했던 노래들을 발표하고, 내 재능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즐겁게 지냈다. 마지막 시간에 프로그램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아파서 꿈을 잃어버렸는데, 아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런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마치고 옹달샘에서 내려왔다. 옹달샘에서 내려오기 전 내 마음에 이미 아침지기가 들어왔다.


그 이후에도 옹달샘과 인연을 맺어 왔다. 옹달샘에서 여러 자작곡들을 발표하고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내게 옹달샘에서 명상치유 프로그램 기간에 최초로 지은 곡은 따로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이다
깊은산속옹달샘 옆
매트 깔고 요가하는
선녀님을 난 보았네

인기척에 하늘 선녀
깜놀하여 날아갈까
길을 찾는 토끼 시늉
바위 뒤로 난 토꼈네, 토!


전체 모임이 아니라 소그룹 모임에서 발표했다. 우리끼리 산행을 하면서 발표했기 때문에, 밖으로 그 시가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 시에 의미를 아는 눈이 밝은 참가자들이 있었지만, 그 당시 아파서 빛을 잃은 내가 빛나던 아침지기에 비하여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고, 그냥 듣고 다들 흘려버렸다. 보통 이런 노래를 살짝 흘리면, 무책임한 묻지마 사랑의 짝대기를 놓아주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빛 잃은 나와 빛 나는 아침지기 사이에는 일종의 신분적 계급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사랑의 짝대기를 놓지 않았다.


2주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갔다. 그때 그냥 잊고 내 삶을 살아야 했다. 이미 나는 아침지기를 사랑하고 있었다. 1달간 청년 자원봉사를 신청하여 옹달샘에 올라갔다. 1달 동안 자원하여 옹달샘의 노예가 되었다. 무상으로 명상센터에서 봉사하는 것이지만, 봉사자 입장에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자원자가 끊이지 않는다. 이불이나 옷을 빨아 말려 개고 정리하는 등, 명상센터의 잡일을 하는 대신에, 옹달샘의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매끼 공짜로 제공받았고, 때가 맞으면 명상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저녁에 일과가 끝난 후에는 공기와 경치가 좋은 곳에서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내가 있을 때는 <빛나는 청년>이라는 청년백수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봉사활동 일을 제외시켜 주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명상센터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한달살기를 하면서, 옹달샘 명상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나는 아침지기와 같은 옹달샘 명상센터에 지내면서, 가까이 지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 청년 자원봉사에 참석했다. 청년 자원봉사를 통해서 다른 것을 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청년 자원봉사가 끝나고 그해 가을 옹달샘에서 주관하는 동유럽 지중해 명상치유 15박 16일 여행에 695만 원의 고액의 참가비를 내고 다녀왔다. 아침지기가 여행팀 부팀장이었다는 이유로, 아침지기가 그 여행에 스태프로 가는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동유럽 지중해 여행에 참가 등록을 하고 돈을 냈다. 아침지기는 그해 옹달샘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 여행에 스태프로 가게 되어 있어, 그해 동유럽 지중해 여행에는 안 갔다. 그것을 알았었더라면 동유럽 지중해 대신 옹달샘 산티아고 순례 여행을 갔을 것이다. 이미 신청하고 돈을 냈으니 그냥 갔다. 동유럽 지중해를 가지 않았다고 해서, 산티아고를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든 일이 하나하나의 개별적 사건이 연이어서 일어나 일이 되는 것이지, 격차를 두고 일어나면 역사로 이어지지 못한다. 2주 녹색 뇌 프로젝트에 왔다가, 1개월 청년 자원봉사 왔다가, 빛나는 청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바로 틈 없이 동유럽 지중해 여행을 연달아 갔으니, 그해 이른 봄부터 한여름까지 옹달샘과 인연을 지속해서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이다. 동유럽 지중해 여행을 가지 않았었더라면, 청년 자원봉사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른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옹달샘에서 청년 자원봉사를 하고, 빛나는 청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옹달샘에서 만든 두 곡의 자작곡이 빵 터져서 옹달샘 스타가 되었다. 첫 곡은 옹달샘의 고도원 이사장님의 생신파티 때였다. 내가 시와 자작곡으로 그전에 옹달샘 시인이 되어 히트를 쳤기 때문에, 고도원 이사장님 생신파티 때, 내 비록 청년 자원봉사자로서 일종의 노예신분이었지만, 전에 불렀던 나의 자작곡을 시킬 것 같았다.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지는 않아서, 그 파티에 부를 새로운 자작곡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옹달샘 마당에서 파리 두 마리가 겹쳐 있는 것을 보았다. 영감이 떠올랐다. 고도원 이사장님 생신파티에서 사회자가 나에게 노래를 시켰을 때는, 이전에 내가 만들었던 자작곡을 불러 보라는 의미였지, 새 자작곡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무대에 올라서, "오늘 이사장님 파티를 위해 새로 지은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 불러도 될까요?"하고 이사장님 생신파티에 모인 100명 가까운 옹달샘 식구들에게 말씀드렸더니, 모두 좋다고 박수를 쳤다.


파리도 사랑을 하는데 파리 파리
파리도 사랑을 하는데 파리 파리
엉덩이 큰 파리 위에 파리한 파리 올라앉아
파리 파리 파리도 사랑을 하는데 파리 파리


대박이었다. 뒤집어졌다. 딱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할 수 있는 중독성 있는 곡이었다. 한 동안 모든 옹달샘 식구들이 그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옹달샘 아침지기의 자녀인 옹달샘의 아이들도 한 번 들은 그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고도원 작가님도 좋아하셨다. 아침지기 그녀도 이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것을 나는 보고 들었다. 내가 자신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라는 것을 모른 채 그녀도 이 노래를 불렀다.


하이얀 명상복에
노오란 잠바떼기
만 입어도 왜 그리 예쁘니
하 도대체 넌 정체가 뭐니


빛나는 청년 프로그램에서는 이 노래를 만들어 불렀는데 이 또한 빵 터졌다. 이 때는 내가 소모임에서 사연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미 내 마음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팀원 외에는 이 노래가 의미하는 내용을 몰랐다. 팀원 가운데서도 그 대상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팀장인 아침지기 외에는 그 시점에는 없었다. 내가 옹달샘을 떠난 후에는 옹달샘 가족 모두가 알게 되었겠지만 말이다. 이 노래 또한 가사를 읽어 보는 것보다, 한 번 들어보면 다 넘어간다. 중독성이 강한 짧은 후크송이기 때문에 한 번만 들어도 따라 부르고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음악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악보를 그리지는 못하지만, 나에게는 작사 작곡 싱어송라이팅에 재능이 있다. 지금 나이에 그 잠재된 능력을 키우기에 이미 늦은 나이이기도 하고, 그 노력을 하기에는 내 평생에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아침지기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하면서, 그 안에 편지 하나를 넣어 주었다. 아침지기는 나에게 고맙다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주었고, 카페 안에서 시집을 펼쳐서 시집 가운데 몇 편을 내 앞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아침지기는 그런 캐릭터였다. 그 시집은 광수생각의 만화가 박광수가 유명 시인들의 시들을 엮어 자신의 그림과 함께 단상을 남긴 시모음집이었다. 시를 모으고 선택한 것은 출판사 편집부의 기획이고, 광수생각의 박광수가 그림을 그리고 코멘트만 달았을지도 모른다. 실제 출판은 그런 식으로 하기도 한다. 아침지기는 내 편지를 읽어보고, 그날 오후에는 좋은 오빠 동생 하자고 그러자고 했다. 그다음 날 아침 옹달샘 카페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신은 처음 보면 인연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데, 나는 좋은 사람이지만 자신의 인연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단정 짓지 말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살면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했다. 지금 모든 가능성을 닫아 놓지 말자고 했다. 언젠가 인연이 될 수도 있으니 결말을 열어 놓자고 했다.

    

이때 나의 대응은 좋았다. 아침지기도 알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때 이미 내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그래서 아주 잠깐 질척되었다. 멋지게 돌아서고 가능성을 오픈해 두면 미래가 있지만, 한 번 질척되면 그것으로 끝난다. 동유럽 지중해 15박 16일 여행을 갔는데, 나에게는 매우 좋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열심히 많은 것을 남기며 많은 것을 얻어 돌아온 여행은 아니었다. 695만 원이나 주고 간 15박 16일 초호화 동유럽 지중해 여행에서, 나는 동네 마실 다니듯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고, 쉬엄쉬엄 구경하고 다녔다. 어쩌면 그런 여행은 평생에 한 번일지도 모를 나는 나는 당연히 한 걸음 한 걸음 돈으로 생각하며 의미가 있는 여행을 만들었어야 했다. 전투적으로 사진을 찍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행을 같이 간 사람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맺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책으로 엮고 묶어야 했다.



    

지금은 아침지기도 결혼했고, 나도 결혼했다. 결혼 후 자서전 쓰기 워크숍이 있어 옹달샘에 갔다가 옹달샘 마당에서 잠깐 마주쳤다. 서로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안부를 나누었다.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지만 예전처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사감 포옹을 할 사이는 아니었다. 1미터 떨어져서 웃으며 서로 아무 일도 없었듯이 반갑게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했다. 시간이 흘렀고, 결혼을 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예전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아내 에미마가 훨씬 더 예뻤다. 서로 자신의 짝과 인연을 만나서 잘 살고 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침지기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지 않고, 아침지기를 생각하며 옹달샘에서 만든 자작곡을 계속 발표할 것이다. 누구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라는 것을 누구에도 말하지 않고 말이다. 주변에서 누군가 눈치를 채겠지만 내 입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동유럽 지중해 여행을 다녀와서, 계속해서 옹달샘에 남아 청년 자원봉사를 계속하다가, 옹달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침지기로서 남아있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옹달샘에서 자원봉사나 알바나 아침지기로 있으면서, 일과 후 개인 시간에 에세이집이나 시집을 써서, 고도원 작가님의 추천과 조언을 받아서 고도원 작가님과 관련된 출판사에서, 옹달샘 시인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고도원 명상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글 쓰는 작가인 아침지기가 될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아침지기가 나에게 '작가님, 사인 좀 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나의 시집과 에세이집의 이야기의 대상이 당신이었다고 그때 고백했을 것이다. 여기서 반전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만약에 그렇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아침지기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더 이상 아침지기를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의 이상형인 배우 한효주와 만날 수 있는 선을 만들어,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고, CGV 한 관을 통째로 빌려 영화를 보고, 청량리역에서 정동진으로 향하는 밤기차 객실 하나를 빌려 새벽에 정동진에 가서 동이 트는 것을 보고, 정동진 바다 근처 동산에 올라가 있는 썬크루즈 호텔 스카이라운지 360 회전 카페에 올라가 동해 바다 전망을 함께 보며 서로의 인생의 미래 전망을 함께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이 그렇게 성공했었더라면, 나의 사랑 에미마와 아기 요한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깊은산속 옹달샘에 대하여 그렇고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사랑 나의 아내 에미마를 만나고, 우리의 사랑으로 아기 요한이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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