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1일 입대해서, 6월 26일 제대했다. 입영일 전 날 1월 10일은 내 생일이고, 전역일 전 날이 625다. 6개월도 채 안 되어 조울증으로 군대에서 강제 전역당했다.
문제가 될 만한 큰 조울증 에피소드와 과대망상은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나의 정신세계는 정상이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기타를 두 개씩 들고 돌아다니고, 기타의 음계에서 우주의 질서와 철학을 발견했다. 그때 경험한 우주의 질서와 철학이 무엇인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었지만, 그래서 어느 선은 넘지 않았지만, 나는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2001년 복학했다. 자취방을 얻어주면 학교 안 가고 사고 칠까 봐, 아버지 어머니께서 기독교 선교단체 CCC 춘천지부 목사님을 직접 만나시고 나를 CCC 기숙사에 넣어 놓으셨다. 선교단체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나는 이상한 몽상에 빠져 학교에 가지 않고 내 온전치 못한 의식이 흐르는 데로 표류했다.
내가 소속된 영어교육과 4년 동안 가장 중요한 학과 생활과 행사는 2학년 때 Skit & Speech Contest였다. 영어로 팀별로 연극을 하고, 개인별로 연설을 하는 이벤트였다. 2학년 1학기 시작하자마자 준비하기 시작하여, 2학기 가을에 친구 가족 등 관객을 모시고 발표회를 했다. 연극에 주요 배역을 맡고, 스피치 연사를 맡았는데, 내가 수업과 연습에 나오지 않고, 과에 보이지도 않고 연락조차 두절되었던 것이다. 연극 같은 팀과 후배와 선배가 나를 찾아 CCC 회관에 왔지만, 내가 학과로 돌아가기에 내 정신이 너무 멀리 가출을 해 버렸다. 2001년 1학기 2학기 학점이 모두 0.0이었다.
2001년 9월 어느 날 학교 안 가고 학교 주변을 배회하다 저녁이 되었는지 CCC 회관에 들어왔다. 미국에서 비행기 몇 대가 빌딩을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한 같이 살던 후배가 장난하는 줄 알았다. 911 테러였다.
눈물이 났다. 그 순간 이 테러가 전쟁을 부를 것이라는 필이 왔다. 내 안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즉흥적으로 나오는 자작곡이었다. 노래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루는 멜로디와 가사였다. 미국과 미국 국민을 위로하고,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을 끊기를 소망하는 노래였다.
아메리카 사랑해요 아메리카 우린 알아요 오늘 그대 아픔을 아메리카 피를 피로 갚지 말아요 아메리카 피는 피를 뿐이에요
나로 시작하여 전 세계인이 같이 노래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몰랐다. 노래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비틀스도 노래로 전쟁을 막지 못했다.
이 증상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증거다. 조울증 과대망상이다. 병원에 입원해야 할 상황까지는 아니었지만, 부모님 집을 떠나 혼자 타지에서 공부하고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불가능한 상태였다. 1학기 2학기를 마치고 나서야 부모님이 나를 집으로 데려가셨다.
2002년 한 해는 집에서 놀면서 파리바게트 알바를 했다. 한창의 때에 놀리기도 그렇고, 춘천에 혼자 보내기도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나를 숭실대 전산원에 보내셨다. 학점은행제로 학점을 인정받고 전문학사 학위를 받고 4년제 편입을 할 수도 있었다. 나는 강원대 영어교육과 학적을 포기하기도 아까워, 학원 다니는 것처럼 전산원을 다녔다. 차후에 강원대 학적을 포기하면, 전산원 학점을 살릴 수 있었다.
전산원 생활과 공부는 잘했다. 과대표를 하면서 교우관계도 좋았고, 성적도 앞에서 달렸다. 고민을 하다가 춘천의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강원대 보다 영어교육과를 놓기가 아쉬웠다.
어쨌든 전산원 다니기 시작하면서, 바로 드디어 소녀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게 되었다. 소녀가 내 마음에 들어온 지 7년 만이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고 전산원에서 여자 동기가 아주 잠깐 눈에 들어오면서 소녀를 잊었다. 물론,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냥 스쳐가는 감정이었다. 그때 나의 눈에 바람둥이로 보였던 남자 동기랑 사귀었다. 사랑은 아니었다. 잠시 지나가는 호감이었다.
완전히 회복이 되어 춘천의 학교로 돌아갔는지, 2004년 1학기 2학기는 내 대학생활 중 최고의 학점을 얻었다. 과에서 성적으로 상위권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적 나쁘지 않은 남자 복학생이었다. 공부가 다라는 것은 아니고, 그해는 조울증으로부터 내 정신을 지켰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