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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Sep 11. 2022

사랑이 지나가면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짝사랑이었던 첫사랑이 7년 만에 끝이 났다. 그렇다 하여 그사이 다른 여자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고2 때 소녀가 내 마음에 들어온 이후, 소녀가 내 마음을 떠나기까지, 7년간 다른 일을 하면서도 나는 순간순간 항상 소녀를 생각했지만, 소녀와 가까이 지냈던 것은 기독학생반 회장 부회장 활동을 함께 했던 고2 1년뿐이었다.


졸업 이후 길에서 어쩌다 한 번 우연히 스쳐 갔고, 그 이후 몇 번의 전화 · 이메일 · 싸이월드 댓글을 남긴 것을 제외한, 소녀와의 연락과 인연은 완전히 끊어졌다. 그 이후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소녀가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떠나갔지만, 소녀와 서로 사귄 것도 가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갈 때마다 한 명의 여자는 예뻤고 나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같은 학과 같은 학년 동기 중 7년 연상의 누나가 있었다. 누군가 사랑할 여자가 간절했던 것인지, 누나를 여자로 느꼈을 때가 아주 잠깐 있었다.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였기도 했지만, 당시 내가 친하게 지냈던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사랑했던 모든 여자처럼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조증 과대망상 증상으로 제정신을 놓쳤을 때였고, 누나를 힘들게 했던 때가 잠깐 있었다. 나중에 정중하게 사과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시간이 흐른 후 편해진 후에, 가끔 생각날 때면 이메일로 안부를 전하면 며칠 후 답장이 오고는 했다.


대학 때 만나서 밥 먹고 이야기하던 여자 사람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사귀는 사이도, 썸 타는 사이도 아닌, 그냥 친구였다. 여사친은 79년생이었고, 나는 빠른 80년 생이었다. 여사친은 예수전도단이라는 대학생 선교단체 자매님이었는데, 신입생이었던 나에게 전도하려고 접근했다가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고, 언제부터 알고 지냈는지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서,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에 없다. 간호학과 학생이었다. 목사님 딸로서 정신과에 다니는 아픈 동생이 있어서, 목사님 아들로서 조울증이 있는 나에게 연민의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자 친구도 아닌, 그냥 여사친이었는데, 나 없이 우리 어머니와 단둘이서 전화 통화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말은 안 하셨지만, 며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나는 99학번이었고 여사친은 98학년이었기 때문에 여사친은 나를 동생으로 대하려 했고, 나는 빠른 80년생으로서 79년생들과 초중고를 함께 다니고 1년 재수하고 99학번이 되었기 때문에 친구 하려 했다. 이성으로서의 설렘이 잠깐 생기려 하는 아주 잠깐의 찰나에, 그땐 이미 친구 곁에 썸 타는 남자가 있었고 현재 남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이성 중에 가장 친했던 친구였지만, 남녀 사이까지는 아니었다. 남자는 친구를 여자로 느끼기 쉽지만, 여자는 특별한 사건과 계기가 없는 이상 친구는 계속 친구인 듯하다. 결혼식 날 아침 축하하러 가려고 생각하고 외출했는데, 갑자기 가고 싶지 않아 안 갔다. 목사님이 된 남편과 선교사로 아프리카에 갔다가, 지금은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 있다고 들었다. 그 이후 전화번호와 스마트폰을 바꾸고 주소록이 지워져 연락처가 남아있지 않았다. 더 이상 연락이 되지는 않는다.

    



나의 청춘은 세상에 없는 사랑이라는 무지개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7년의 사랑이 끝나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했다. 사랑했던 모든 여자가 운명은 아니었다. 사랑을 찾아 떠난 여행 중 지나갔던 모든 마을에 나의 심장을 훔쳐 간 여신이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수많은 여자에게 끊임없이 설렘을 느꼈지만, 아내 에미마를 만나기까지 운명이라고 느낀 여자는, 첫사랑을 시작으로 아내 에미마를 만나기 전까지, 20년 동안 5명이었다. 마흔쯤에 아내를 만나 처음으로 여자와 사귀고 결혼했으니, 그때까지 비록 짝사랑에 불과했더라도 운명으로 느꼈던 여자가 5명이었다는 것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사랑할 대상 한 명을 찾아,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했었다는 가정 아래, 마흔쯤 되어서야 아내를 만나기 전 운명의 여인이 5명이었다는 것은, 피 끓는 청춘으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은 보통이었지 싶다. 물론, 나에게만 운명이었던 것이지 상대방에게 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첫사랑이 잘 되었다면,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었을 것이고, 두 번째 사랑이 잘 되었더라면, 두 번째 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사랑은 곧 결혼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던 그 순간에는 그 사랑의 끝이 보이지 않던 사랑지상주의자였을 뿐이었다. 사랑은 곧 결혼이라는 주의는 아니었지만, 사랑에 한가운데서 사랑은 언제나 영원할 것만 같았다. 결혼이란 점을 찍고,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두 사람이 끝까지 길을 같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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