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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Dec 26. 2022

스무 살, 조울증

나는 1980년 1월 생이다. 빠른 생일이라, 79년 생과 초중고를 같이 다녔고, 재수를 하여 80년 생과 99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스무 살이었다. 2000년 1월 11일, 군대에 갔다. 입대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입대 전날 1월 10일이 내 생일이었다.

    

군대 가기 직전 나 홀로 여행을 갔다. 대학을 다니던 춘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강릉에 갔다가, 강릉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동해에 갔다가, 동해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다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 집으로 돌아왔다. 밥은 편의점에서 때웠고, 잠은 버스와 기차와 PC방에서 졸았다. 나의 시점에서는 가출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여행을 떠났을 뿐이었다. 부모님은 입대일까지 집에 안 들어올까 봐 걱정하셨지만, 애초에 입대 전날 집에 들어오는 스케줄로 여행을 떠났다.


재수를 하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빠른 생일이라 같은 학년 동기와 같은 나이였기 때문에, 같은 과 동기가 많이 군대에 갔던 2학년 마친 후 갔으면 되었다. 나라를 지키려고 일찌감치 자원하여 군대에 갔던 것은 아니다. 군대 간다고 하면 그토록 보고 싶고 그립던 소녀랑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길에서 한 번 마주치고,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하고, 몇 번 이메일을 보내고 싸이월드에 댓글 남긴 것, 그 외에는 더 이상 연이 닿지 않았다. 나와 소녀 모두 재수를 했고, 소녀는 인서울 대학에 갔고, 나는 춘천의 강원대 영어교육과에 갔다. 나는 지방대라도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였고, 소녀는 이름은 알려진 인서울 대학이라도 명문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소녀의 진학 정보를 알았더라면 같은 대학 아무 과에 성적 맞추어 가서, 소녀 가까운데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의 꿈은 '소녀 사랑'이었으니 말이다.


1학년 때 나는 우리 과 교양보다 컴퓨터 관련 수업을 주로 들었다. 그중에서도 홈페이지 만드는 수업을 들었다. 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포토샵도 배웠다. 대학 1학년 때 나는 학과 공부와 과 생활 대신에 소녀에게 나의 마음에 고백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어린 왕자'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나는 너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웹페이지를 제작했다.     




군대에 갔다. 산이 높고, 겨울에 추운, 강원도 양구로 갔다. 나는 논산훈련소가 아닌 춘천 102 보충대로 입대하여, 양구의 사단 훈련소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고되고 나는 어리바리했지만, 같은 동기들끼리 생활하며 재미있었다.

    

훈련이 끝나고 배치받은 자대가 지옥이었다. 우리 사단에는 GOP 연대 2곳과 예비 연대 1곳이 있었다. 우리 연대는 예비 연대였다. GOP 연대는 주로 GOP에 올라가 경계 근무를 한다. 우리 예비 연대는 매일 양구의 험준산령을 타 다니며 매복 훈련을 한다. 쉽게 말하자면, 전쟁이 나면 GOP 연대가 총알받이를 하고 있으면, 우리 예비 연대가 산을 타고 올라가 그 총알받이 교체해 주는 역할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부대는 매일 완전군장하고 양구의 험준산령을 타 다녔다.


매일 고된 훈련을 하니 모두의 신경은 날카로웠다. 일머리가 없고 느린 나는 정신적인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나를 괴롭히는 선임들이 미웠고, 아무도 미워하지 말자는 마음의 결단을 내렸을 때, 사단에서 전출 명령이 떨어졌다. 군 휴양소인 사단보충대로 전출이 났다. 사단보충대에서 사고가 났고, 부대를 해체하고 새로 구성했고, 내가 차출이 되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다. 지옥에서 천국에 간지 일주일 만에 조울증에 걸렸다. 나는 세상이 행복해지고 평화로워지는 방법을 개발했다. 내일 당장 모두 총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세계평화의 방법을 발견했다. 그 방법을 중대장에게 보고하면. 청와대에서 나를 데리러 올 것이었다.     

    

"다함아, 좋은데 가자." 

중대장이 나를 불러 차에 태웠다.


"아무거나 하나 골라." 

편의점에 들렀다. 제일 비싼 음료수를 골랐다.      


청와대로 가는 줄 알았는데, 언덕 위에 하얀 집이었다. 주사 한 대를 맞았더니 오욕칠정의 모든 욕구가 사라지고 쓰러져 잠에 들었다. 코끼리도 쓰러뜨린다 하여 '코끼리 주사'라고 불리는 안정제 주사가 있다. 아마도 그게 그것이었을 것이다. 군 병원 3개월 조금 못 되어, 군 입대 6개월 조금 못 되어, 의가사 전역을 했다. 빤스 한 장, 양말 한 켤레, 군대의 것은 먼지 하나 가져 나오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가져오신 옷을 입고 군대에서 쫓겨났다.     




정신과 군의관 선생님께서는 어머니께 일단 3년 정도는 병원에 꾸준히 다니며 절대로 약 끊지 말라고 했다. 괜찮아진다 싶으면 병원 안 다니고. 약 안 먹고를 반복하며, 수차례 재발을 했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길고 긴 방황을 했다. 조울증에 대해 본인과 부모가 정확하게 알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대체로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도 이 병에 대해서 대충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오랜 기간 재발을 반복하며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 말을 귓등으로 듣는 다기보다, 어느 때는 전문의 의견을 존중하다가, 어느 때는 제 멋대로 살다 보니, 이게 반복이 되면서 오랜 세월 불행하게 산다.


나는 내가 조울증에 걸린 원인이 사랑과 군대의 실패로부터 온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았거나, 사랑에 목매지 않고 내 삶을 살았더라면,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군대에서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부대였다면,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첫사랑에 실패했더라도, 무난히 군생활을 마쳤더라면, 제대하고 내 삶을 찾아갔을 것이다. 첫사랑에 성공하거나 미련을 두지 않았더라면, 군생활을 견뎌냈을 것이다. 두 가지 스트레스의 쓰나미가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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