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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Dec 16. 2023

마중물

  낮인지 밤인지 분간 할 수 없었다. 닫아버린 커튼은 방안의 어둠마저 꽁꽁 가두어버렸다. 창문 틈새로 삐죽 고개를 들이민 햇살만이 집안의 인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잠결이었다. 밖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은 뜨고 싶지 않던 눈이 반사적으로 떠졌다. 화들짝 놀란 귀도 문 밖으로 세웠다. 거실에 있던 아기보행기가 혼자 울고 있었다. 허둥지둥 뛰쳐나온 거실에는 죽음 같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거실 구석에 밀쳐둔 보행기가 빽빽거리며 주인을 찾고 있었다. 저도 주인을 잃은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텔레비전이 켜졌다. 누가 켜짐 예약이라도 해두었던가. 기억도 아예 없다. 연거푸 놀란 가슴은 귀신에게 홀린 듯 두 다리가 풀썩 무너져 내렸다. 참았던 울음이 그제야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눌려있던 울음의 무게가 바위보다도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을 앞세운 죄 많은 어미였다. 뒤도 돌아다보지않고 하늘로 올라가던 연기가 눈물 속에 자꾸 가물거렸다.      


  첫 아이를 묻은 가슴은 늘 축축한 슬픔에 젖어 있었다. 밥을 먹어도 먹는 게 아니었다. 꿈속에서조차 안개 속을 헤매고 다녔다. 길을 걷다가도 또래의 아기들이 보이면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도 산 사람은 또 살아야만 했다. 목구멍을 찌르는 밥알이라도 억지로 삼켜야 했다. 어둠의 장막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길게 드리워진 슬픔의 그늘을 언제까지 끌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길은 하나뿐이었다.

      

  세시를 알리는 알람시계가 울린다. 무거운 몸은 이불을 덮었다 밀치기를 반복한다. 새벽기도를 발심할 때는 기도만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그 발심도 단 며칠, 잠과의 싸움은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이불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드는 몸을 매몰차게 이끌고 겨울 찬바람과 맞서듯 새벽 기도를 나선다.     


  세상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업장이 얼음장처럼 두터워서일까, 몸도 마음도 얼어붙는 날씨다. 남편과 늦게 얻은 두 아들은 세상모르고 잠들었다. 내가 새벽을 밝히면 저들이 좀 더 편안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어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자꾸 방심하려는 마음을 인정사정없이 도리질 쳐댄다. 마음의 도피처를 찾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현관을 빠져나온다.      


  신도들을 태우기 위해 절에서 운행하는 차를 기다린다. 거리의 가로등은 희뿌옇게 길을 밝히고 있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쓰레기 수거차가 얼어붙은 새벽공기를 쓸면서 지나간다. 저들은 치열한 삶의 새벽에 첫 발을 내딛는 진정한 승리자들이다. 슬픔에 질질 끌리듯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헤매는 나는 삶에 무릎을 꿇은 패배자일 뿐이고. 도시는 아직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새벽 네 시부터 기도를 시작한다. 경을 읽고 정진하기를 두어 시간 가량. 오롯이 나의 죄가 드러나는 시간이다. 도망갈 수도 숨을 수도 없는 부처님 앞에서 머리 조아려 빌밖엔 별도리가 없다. 어느새 여명이 잔잔한 기도소리처럼 법당을 밝혀온다. 업장도 밝은 빛에 조금씩 잠식되어 가는 착각에 빠져든다. 순간 마음도 씻긴 듯 개운해진다. 법당 문을 열고나서면 하얗도록 맑은 세상에 잠시나마 백지가 되어버린다.     


  ‘카톡’ 휴대폰 문자가 순간 잠을 깨운다. 절의 도반에게서 온 안내 문자다. 모일 모시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새벽기도를 다녔던 십여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 일상을 포기한지도 어느덧 수년이 또 지나버렸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새벽 기도를 접었다. 새 일터는 새벽에라야 일을 마친다. 집에 돌아오면 새벽 두어 시, 세시에 새벽기도를 나선다는 것은 더 이상 무리였다.     


  새벽 기도를 하던 십년 내내 잠과의 싸움은 늘 첫 날처럼 힘들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따라 아팠다. 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나를 밝혀불빛은 바로 믿음이었다. 향을 싼 종이에는 향이 베인다 했던가. 땟물에 절은 거울을 닦아내듯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닦이어갔다. 그 하루하루는 더딘 나날이었지만, 돌아다보니 어느새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였다. 옹이처럼 박혔던 상처도 어느새 삶의 나이테로 굵게 자리 잡아버렸다.      


  내면에서 끓어 넘쳤던 울화를 세상 그 어떤 약으로 치료할 수 있었을까. 만신창이로 엉켜버린 시간을 한 오라기씩 풀어내는 것만이 답이었다. 결코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던 상처도 기도의 힘으로 조금씩 아물어 갔다. 그토록 머리 조아렸던 숱한 시간들이 모여서 오늘의 일상을 되찾을 수도 있었다. 내가 닦아야 세상도 밝아졌다. 내가 웃어야 세상도 웃었다. 기도의 힘으로 비로소 거듭날 수 있었으니 지금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 시절 다져두었던 밝은 기운 덕에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지내고 있는 요즘이다. 빛을 가렸던 커튼도 이제 많이 열어젖혔다. 가끔씩 도반들로부터 새벽기도를 다시 하자는 연락을 받는다. 그러나 그 깨끗했던 날들로 다시 돌아갈 수가 있을까. 새벽 기도를 했다고 도가 트이거나 마음이 완전히 비워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논바닥처럼 쩍 갈라졌던 내 삶을 다시 생기로 적셔주는 마중물은 너끈히 되어주었다.      


  무심결에 올려다 본 벽시계가 새벽 세시를 향해 간다. 그 시절 내 영혼을 깨웠던 시간에 지금의 난 내일을 꿈꾸기 위해 잠자리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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