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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몬드봉봉 Oct 22. 2023

주체성은 "   "에서요 (1)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



"채니야, 아이가 초등학생 3학년인데 영어 공부를 어떻게 시키면 좋을까?"


"저는 초등학생 때 영어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썼었는데, 그게 지금의 제 실력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00 시리즈와 ## 시리즈 추천 드려요!"


"그래ㅎㅎ..."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우연히 다시 뵀을 때 단순 궁금증에 여쭤봤다.


"그 영어책 시리즈 좋아하던가요? 재밌다고 하죠?"


"아니, 학원 보냈어."




거대한 어학원 건물 앞에서 작은 어린이들을 싣고 나르는 학원차를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어린이들은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학원에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다른 결과물을 얻는다. 우리는 학원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 점수. 그러고는 목표를 달성했다며 기뻐한다.


물론 시험을 위해, 성적을 위해 학원을 가는 것이라면, 단지 그것이 학원에 가는 이유라면, 슬프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충분히 납득이 되긴 하니까.







2007년, 아빠의 중국 발령으로 우리 다섯 식구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당시 나는 세 살이었다. 해외학교는 인원이 많지 않아 초등, 중등, 고등이 별개의 학교로 나눠져 있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엄마는 초등교사셨는데, 사립/공립학교를 불문하고 모든 학교에서 교사 자녀는 수업료를 일절 받지 않는다. 엄마가 교사로 근무하시던 학교에 다녔던 우리 셋은 감사하게도 공짜로 공부할 수 있었다.


하루는 초등학교 4학년 국어 선생님께서 개인사정으로 학교를 나오지 않으셨다. 마침 수업이 없으셨던 엄마가 급하게 감독 선생님으로 수업에 들어오셨고, 그 자리에서 몇몇 친구들이 소리쳤다.


"선생님, 채니 집에서 그만 좀 공부하라고 해주세요!"


"이채니? 쟤 맨날 집에서 왔다리갔다리만 하는데..."


엄마도, 나도 동시에 갸우뚱거렸다. 사실이었다. 실제로 내가 집에서 하는 건, 왔다리갔다리였다.





인풋 (Input)


나는 영어를 책과 오디오 파일로 공부했다. 어째 ‘공부'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어를 경험했다는 워딩이 적합할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영어를 습득했다.


진부한 이야기겠지만, 책을 통해 글을 읽는 법, 사고하는 법, 글을 쓰는 법,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기주도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다. 영어 학습법에 아무런 논리적 체계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다. 흔히들 아는 정석적인 방법이 아니었을 테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어 학원 A에서 스폰서 제안을 받았었다. A 학원은 영어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관련 퀴즈를 푸는 '영어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독서 프로그램만 신청한 채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원장님께서 나에게 영어 수업을 무료로 등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오, 전 좋아요."


나야 좋았다. 영어 수업이 좋아서가 아니라 학원을 갈 수 있어서였다.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어 학원 다니던 친구들을 한창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나였다. 하교 후 학원차를 타러 가는 친구들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A 학원은 학원 문을 들어서면 한쪽 면에 영어책이 가득했던 곳이었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신중히 책을 골라 집으로 빌려 가곤 했다. 영어 수업은, 사실 기억도 안 난다. 말 그대로 정말 기억이 하나도 없어서 수업을 했는지조차 며칠 전 엄마에게 확인차 여쭤봐야 했었다.


어쩌면 나에게 영어수업은 '나도 학원차를 탄다'는 간지용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A 학원을 좋아했다. 책장에 꽂힌 영어책들이 전부 '컬러'책이었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더 이상 집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질리게 보던 흑백 제본책이 아니었다. 책을 문질러도 손바닥이 잉크로 까맣게 물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었다. 행복했다.


메리 폽 오즈번의 'Magic Tree House', 'The Zack Files', 그리고 '제로니모의 환상모험' 시리즈를 가장 좋아했다. 그야말로 환상적이기 때문이었을까. 제공되는 영어 오디오 파일을 틀어놓은 채, 책 속 주인공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곤 했었다.


엄마는 책에는 절대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언니와 내가 Magic Tree House 시리즈를 다 읽으니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언제나 우리 집 책장에는 금방 따끈따끈한 신상책이 꽂혀 있곤 했다.


문득 영어 실력뿐 아니라 나의 문학적 감수성, 상상력, 그리고 창의성은 어린 시절 이 책들에서 경험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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