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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몬드봉봉 Oct 22. 2023

 주체성은 "   "에서요 (2)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



아웃풋 (Output)



독서가 인풋(Input)이었다면, 아웃풋(Output)은 글쓰기였다.


글다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야말로 영어와 글쓰기를 진정으로 좋아하게 된 때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Patrick 선생님께서 언제나 4학년 담임을 맡으시곤 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둘째 언니가 4학년이 되었을 때, 2학년이었던 나는 언니를 부러워 했었다. 나도 얼른 패트릭 선생님 반 학생이 되고 싶었다.


2년이라는 세월은 금방 흘러, 나도 어느 순간 패트릭 선생님 반 학생이 되어있더라. 선생님과 함께한 1년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1년이라고 말하며 추억한다.


패트릭 선생님은 매주 학급 뉴스레터를 직접 제작하셨고 우리는 매주 금요일에 뉴스레터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학급 뉴스레터에는 금주 공지, 과목별 진도 상황, 학습 목표 등이 있었다. 우리 4학년 학생들이 뉴스레터를 받으면 가장 먼저 확인했던 것은, 앞면의 '학급에서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와 뒷면의 'Student News' 섹션이었다.


[ Student News ]


패트릭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매주 자율적으로 Article을 써서 제출하도록 하셨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글을 선별하신 후 몇몇 글이 뉴스레터의 'Student News' 섹션에 실리곤 했다.


Article 제출 유무는 절대적으로 우리의 '자율성'에 맡기셨다. 아예 글을 쓰지 않았던 친구들도 있었고, 긴 글을 한 편 써서 제출하는 친구도 있었다. 매주 3~4편씩 긴 글을 써서 제출하는 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글 쓰는 재미를 붙이게 된 데에는 그로부터 오는 희열감, 뿌듯함, 성취감이 전부였다. 내가 배운 단어와 표현만으로 한 편의 이야기가 뚝딱 만들어졌다는 희열감, 그 이야기가 학급 뉴스레터에 실렸다는 뿌듯함,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선생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성취감.


글을 쓰면 쓸수록 더 쓰고 싶었다. 이번 주에도 내 글이 실렸을까 기대하며 매주 금요일, 뉴스레터 뒷면을 확인하곤 했다. 문장력이 아무리 형편 없었을지라도 '생생한' 에피소드로 승부했던 내 글들은 거의 매주 실리곤 했다. 그렇게 글쓰기에 점점 더 큰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패트릭샘 가장 좋아하셨던 글,  <Scary Lunch Lady>


선생님은 나의 수많은 글들 중, <Scary Lunch Lady> 을 가장 좋아하셨다. 지금 봐도, 당시 내 글들은 하나같이 많이 부족했다.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 문장들은 차고도 넘쳤다. 그러나 선생님은 단어와 표현, 문장 구조가 틀렸다며 고치라는 말씀이 없으셨다. 아이들로 하여금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길 원하셨고, 우리가 마음껏 표현해보기를 원하셨다. 덕분에 나는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즐겁게 글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라는 아웃풋(Output)으로 나의 영어 실력의 기초를 견고히 하게 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항상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교육 프로그램과 행사를 끊임없이 고안하셨고, 언제나 더 나은 교육 방식을 시도하셨다. 고작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그렇게 느꼈을 정도니, 선생님께서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셨는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Mr. Patrick과 함께한 그 1년으로,

나는 초등교사를 꿈꾸게 된다





하이스쿨 스튜던트



내신 기간을 나름 좋아했다. 놓쳤던 개념들을 복기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우와. 나 이해했어."



그럴 리가

당연히 거짓말이다



카르페디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려고 노력했던 것일 뿐. 지겨워 죽을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려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다. 헷갈리던 개념이 확립되었을 때, 그 짜릿한 희열에 중독'되려고' 했다. 그래야만 내가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싫어한다

한국식 영문법을 싫어한다


정작 쓰이지도 않는

실제로 영어권 사람들도 쓰지 않는,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을 읽으며


소수를 위해 다수가 틀리도록 만들어야 하는,

문법적으로 접근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보며


짜증이 났다


"에이 몰라. 영어는 감으로 풀지 뭐."


그래도 점수는 중요하니 영어 시험 3~4일 전부터 지문을 통으로 달달 외우기 시작해, 시험 종료 즉시 까먹어버리는 의미 없는 벼락치기로 공부하기 일쑤였다.


시험 운이 좋을 때만 영어 교과우수상을 받을 수 있었다. 문법적으로, 체계적으로, 성실하게 공부해서 언제나 100점을 맞는 친구들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정말 대단하지만 나는 도저히 못해."


나는 당장 오늘도

문장의 5형식이 뭔지 모른다


나는 영문법을 잘 모른다

근데 영어를 잘한다

모순이라 할 수 있을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도 한다




"굳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굳이" 공유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나만의 기억 속으로 영원히 안녕을 고해도 되는 내 작은 경험들이 어쩌면 누군가는 필요로 하는, 참고할 만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누군가는 문법책이 아닌 '진짜 책'으로 공부했다고.


음- 그리고 그렇게, 썩 나쁘지 않게 성장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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