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기준
난 어른이 되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나는 성인과 어른을 구분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만 19세 이상이 되면 누구나 법적으로 성인으로 구분이 된다. 성인이 되면 미성년자때 할 수 없었던 주류나 담배 구입, 또는 영상시청에 대한 권한 등이 자유로워진다. 갓 성인이 된 사람들은 마치 그것만으로 어른이 된 기분을 만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갓 성인이 된 20대를 어른이라고 통상적으로 부르진 않는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모든 성인을 어른으로 구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모든 성인을 어른으로 보지 않는다. 성인과 어른의 같지않은 이 지점을 나는 일종의 '능동적 호칭(타이틀) 보유 비율'로 구분되는 것으로 생각해 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 어디 초등학교의 학생 또 어느 고등학교의 학생. 이런 호칭은 자신이 스스로 회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호칭들은 나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 선택하는 대학도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아빠 헉은 엄마, 어느 회사의 어떤 직급, 어떤 창작품을 만든 작가, 인플루언서등 이런 호칭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쟁취해 능동적으로 성취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주어진 호칭과 능동적으로 쟁취한 호칭은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하게 된다. 이영도 작가님의 판타지소설 [드래곤라자]를 관통하는 단한줄 "나는 단수가 아닙니다." 가 바로 이 의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아무튼 간에.
한 사람에게 다양하게 주어질 수 있는 호칭의 비율이, 갓 태어난 아이에겐 수동적인 것이 100% 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성장하며 사람의 행위와 노력에 따라 호칭의 비율이 점점 능동적인 것의 영역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나를 보여주는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해보는것, 나를 정립해보는 공간을 더 많이 만드는것은 sns나 매우 인터넷에선 쉬운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유의미한 부분은 아닐 것이다. 쟁취해낸다는 것은 단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니까.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능동적 호칭을 수학적으로 몇% 비율이라 나눌 순 없겠지만, 능동적으로 쟁취한 호칭이 50%가 넘어, 자신을 부르는 비율의 대부분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은 '어른'이 되었다고 그렇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어른은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