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이 되며 미용실을 가지 않게 되었다.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우선 넓어진 이마 때문에 머리를 이쁘게 잘라도 별 효용을 못느끼기 시작한 것이 가장 주요했다. 미용사 분이 '어떻게 해드릴까요?' 라는 질문에 언뜻 답하지 못하고, 자질구레하게 답변을 하는것 나에게 연민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두번째 이유는 블루클럽 5,000원컷 가격에 익숙해진 나에게, 유수의 미용실들 가격이 나와는 다른 세상의 물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두번째 이유도 사실 첫번째 이유의 부산물 같기도 하다. 이쁘게 결과물만 나온다면야 돈이 크게 아깝지 않았겠지.
이래저래 미용실을 가지 않게 되면서 '바리깡'을 구매해 이래저래 머리를 밀어 보았는데 결혼을 앞두고 있을때쯤 바리깡이 고장이 났다. 그리고 결혼 관련 촬영 준비로 또 미용실을 잠시 방문하곤 했는데, 결혼 이후 다시 미용실은 미지의 영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내가 직접 가위를 잡아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가위로 머리를 정리해보며 처음으로 한일은 어떻게든 잘 보고 하려고 거울을 준비한 일이었다. 앞에 거울을 두고, 한손에 거울을 들어 뒤통수 쪽으로 두어 시야의 사각을 없이려 했다. 거울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시야에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야가 아니었다. 거울을 통해 이중으로 거울을 보며 가위질을 하는 것이, 그 이중적 움직임이 그려지는 시야를 보며 손을 움직이는 것이, 그러면서 가위질을 한다는 것이 어색했다. 오히려 잘 보이게 한다는 것이 정상적으로 몸을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흐트러진 시야 정보를 조합하려 할 수록 판단은 오해를 불러오고 있었었다. 중요한건 시야에 어떤 정보가 들어온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젖가락질을 배우는 아이처럼 어설프게 몸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때론 이런 실수를 하곤하는것 같다. 내가 가위질을 쉽게 할 수 있다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울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어떤 정보와 정보를 파악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작동할거라거 생각해버리는 실수.
특히 sns같은 곳이 그런식으로 정보를 오해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근육을 키우는 것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있고(또 이를 아주쉽게 찾을 수 있고) 몸을 빵빵하게 키운 근육맨들의 사진이 온갖 피드에 널려있다. 운동뿐만아니라 투자의 경우도 그렇다. Sns에 돈버는 수많은 비법을 알려주겠다는 현혹적 멘트와, 수익인증 결과물들이. 발에, 아니 손가락에 채인다.
그러나 그 시각적인 내용들이 뒤섞여 있는 정보들은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와 당신의 자연스러운 동작이 아니다.
자세히 볼 수록 더 깊게 알게 될것 같지만. 내가 어떤지 알지 못한채, 어떤 방식만을 깊고 자세히 보려고 노력한다고 좋은 결과가 생길리 없다. 그것은 단지 시각과 시각을 통한 뇌의 혼란일 수 있다.
눈으로 본것보다 중요한건 몸에 '체화'된 경험일 것이다. 깨달음이 남은 실패적 경험이 자세히 보려고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몇번을 나는 머리를 혼자 잘라보다, 결국 미용실의 헬프를 받은적도 있고, 쥐가 파먹은 것처럼 땜빵같은 것들을 혼자 만들어 보기도 했다.
몇번의 시행착오 이후, 이제 나는 머리를 자를때 눈으로 보려하지 않는다. 머리의 길이와 가위가 잘리는 부분이 맞닫는 면적을 생각하고 가위질을 한다. 그렇게 하면 전문가들보다 못난 결과지만 가위로도 대충 짧고 단정하게 정리를 할 수는 있게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미용실을 가지 않고 가위를 잡는다. 머리 모양은 별로일지 몰라도 손의 동작은 더 수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