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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Dec 18. 2024

사주는 맞았지만 사람은

2016년에 시어머니께서 철학관에서 사주를 보시고, 저희가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강하게 권유하셨어요.

반포에서 살고 있던 저희에게, 앞으로 20년 동안 강북에서 살아야 한다고 갑자기 통보하듯 말씀하셨어요.


저는 사주를 믿지 않는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인생 계획을 모두 세우고 살 집도 마련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머님의 말씀이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삶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철학관에서 조언을 듣고 잘 이겨내 오셨대요. 

그러한 어머님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저희 남편과 형님은 철학과 사주가 종교와 같이 몸에 배어 있었어요. 어머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겠지요.


저는 삶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시아버님께서 암투병 중이셨기에 7~8년을 시댁 어르신들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려고 정말 애써왔는데,

갑작스런 이사 통보로 저의 자유의지가 묵살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의 삶인데, 아이들을 전학시키면서까지 사주를 따르라는 말씀에 시댁에 대한 그간의 설움이 폭발했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원하는 것이니까'라고 받아들이려고 해도, '이 집에서 나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구나'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이후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강북으로 이사를 하고 아이들을 전학시켰습니다.


사주에 맞는 집으로 이사해서인지, 강북으로 이사 간 후 좋은 일이 많이 있긴 했습니다. 

아이들도 해가 잘 들고 동네 사람들의 정이 따뜻한 동부이촌동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어요. 


문제는 학원과의 거리였습니다. 차멀미를 하는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1시간씩 차를 타고 학원에 가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요.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마중 나갈 때마다, 시어머님을 설득하지 못한 저의 무력함을 느껴야 했어요.


그러다 첫째가 6학년이 되었을 때 시어머님의 말씀을 거역하기로 결심하고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이때에는 남편도 아이들을 위해 이사를 가는 게 맞다고 생각을 했는지, 어머님께 잘 말씀을 드렸지요.

그 덕분에 이사가 진행이 되었고요.




결과적으로는 사주팔자가 맞는 셈이 되었습니다.


강남으로 이사 온 후 지식산업센터와 오피스텔 분양권 투자로 엄청난 손해를 보았고, 대출 이자를 갚느라고 살얼음판을 걸으며 삽니다. 

남편과는 그리 살갑게 지내고 있지 못합니다. 투자 실패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지막 2건의 계약을 제가 강하게 밀어붙여서 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자책감으로 요단강을 몇 번이나 찾아갔고요.


철학관 아저씨가 권한 방법대로 계속 강북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합니다.

이촌동 사모님으로 우아하게 살고 있을지, 시어머님의 서슬에 더욱 짓눌려 숨도 못 쉬고 살았을지, 동부이촌동의 진짜 부자 사모님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괴물 엄마가 되어 있을지.


이촌동에서 계속 살면서 아이들은 학원 대신 과외로 공부시키고, 

글쓰기와 책 읽기를 시작해서 열등감을 극복하고, 

시댁에도 당당하게 살아갔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인생이었겠어요. 

상상만으로도 '참 고운 인생이었겠네'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이미 2016년, 처음 이사 통보를 받았을 때부터 마음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아파트 투자가 잘 되고 있던 2020년에도,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아이들만 바라보았거든요.

몇 번이나 요단강으로 향하려는 발걸음을 애써 돌려세웠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아마 글쓰기와 책 읽기를 만나지 못한 채로, 가족들과 갈등이 깊어지다가 벌써 요단강을 건넜을 수도 있어요. 

그럼 우습게도 제가 사주를 극복해 내는 것이었겠네요. 제 목숨값으로요.


출처: etsy.com


아무리 좋은 조언이나 충고라도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면 끝까지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정말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라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을 고통스럽게까지 하는 게 맞을까 싶어요.

대신 당사자가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는 게 인생을 먼저 살아간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그 어떤 사주가 훌륭하고 맞다고 해도,

사람이 우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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