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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실패가 자랑스러워집니다

by 위드웬디

빌런 동료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본인이 말한 게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삶이었는지 대강 가늠이 된다.

이력서에서도 알 수 있지만, 말과 태도를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해 보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분명 명문대 박사 과정을 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탓도 있겠으나, 겉으로 보이는 말 속에 깔려 있는 일반적인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가끔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라고 어디서 들었다는 말을 할 때, 마치 중학생 또래의 아이가 신기한 이야기를 알았다는 듯한 느낌이다. 즉, 마흔을 바라보는 사람이 가지는 일반적인 사고의 수준이 아니다.


미혼이기 때문에 결혼 생활과 육아에 대한 공감이 어려움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40년 가까이 되는 삶은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뇌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공감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이해마저 할 수 없다면,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분은 자기 스스로 해본 게 아무것도 없구나.

시키는 일만 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치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겠구나.

업무에서만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아예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구나.

게다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면, 본인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겠구나.


실패는 도전의 증거라고 했다.

내가 큰 실패를 해서 마음이 무너졌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만 깜빡거리는 사람을 보니 오히려 힘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패를 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얕은 삶을 사는지 눈앞에서 보는 기회였다.


빛나는 성공을 해야만 삶을 충실히 사는 게 아니었다.

차마 말을 꺼내기도 부끄러운 실패, 넘어지고 눈물 흘리며 걸어온 길도 아름다운 삶의 궤적이었다.


상처 투성이 내 삶을 미워할 뻔했는데, 빌런 덕분에 추상화 같은 내 길이 아름다움을 실감한다.

도전의 증거인 내 실패가, 반짝이는 삶의 과정이었던 그 시간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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